누이가 임신 3주 차라고 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이 시기의 태아는 키가 0.2cm, 체중이 1g 미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4개의 아가미에 긴 꼬리가 달린 물고기 형상이란다. 신기하다. 자기 안에 생명의 씨앗을 심어 품고 성장시키는 포유류의 종 번식 시스템이 새삼 신기하다.
그보다 더욱 신기한 일은, 누이가 자신을 ‘엄마’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고작 1그램. 누이는 어떤 감각으로도 아기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고 약국에서 구매한 진단 시약과 병원 진료를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폭설 풍경처럼 보이는 초음파 영상 한구석을 가리키면서 “축하합니다. 임신 3주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누이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속에 새로운 자아와 기관이 돋아난 것인지, 아기의 대리인인 듯 생각하고 먹고 움직이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아이 옷이 보이면 멈춰서고 주관의 음식 기호는 서서히 무시되고 있다. 입덧이 시작된다면 자신이 ‘누구로서 살아가는지’는 잊어버리고 ‘누구를 위하여 살아가는지’만을 떠올릴지 모른다. 누이는 주변 사람의 축하를 기쁜 마음으로 반기고 있지만, 나로서는 모든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고작 1그램. 그것이 자신의 몸속에 분명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사유 주관이 인지하는 순간, 누이는 자신을 ‘엄마’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미 사유 대상과 과장된 사유 내용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는 과학과 종교에 제한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촌충보다도 훨씬 작은 생명에 대해 인식하고 겪게 된 변화는 주변인의 입장에서 신기하기만 하다. 세상의 수많은 남자 가운데 하나인 나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약간 아쉽기도 하다. 이것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심정이었을까. ― “사유하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탐구할 수 있는 것은 탐구하고, 탐구할 수 없는 것은 말없이 사모하는 일이다.”
멀지 않은 시간에 누이는 1그램짜리 주니어가 자신의 꼬리로 자궁을 힘차게 채찍질한다면서 벌떡 깨어날 것이다. 벌써 이 묘한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웃음이 나온다. 내 복에는 절대 없을 일. 오는 12월에 결혼식을 올리는 고향 친구 김영길 씨의 연인도 임신 3주 차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