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온전히 깨어났을 때 모조리 눈송이에 희게 뒤덮여 아름다운 풍경만 쓸쓸히 남아있길 바랐다. 그러나 하찮은 소망마저도 흰 꿈 위 수없이 찍힌 내 발자국에 뭉그러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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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된 걸까. 왜인지 우리는 침대 위에 마주 누워있다. 너의 눈코입을 만지고 싶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로도 기쁨에 쓸려내려갈 것 같다. 어느 결에 내 들뜬 표정을 엿보기라도 했는지 너는 눈 감은 채 미소 짓고 있다. 그러다 느닷없이 이불 바깥으로 드러난 네 어깨에 몸소름이 돋았다. 너는 잠든 척을 파하고 재빨리 이불을 끌어당겼다. 나는 이불에 딸려가기라도 하듯 너의 찬 몸 위로 올라간다.
“배고파.”
우리는 횟집 문가 자리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몇 피스가 빠진 모둠 초밥, 천사채가 없는 모둠 회, 참이슬 후레쉬, 그리고 소주잔이 놓여있다. 너는 초밥을 집어 앞접시에 옮기고 밥만 절반쯤 떼어 덜어낸 뒤 간장 간을 하고 입안에 넣는다. 그리고 감탄사와 함께 술잔을 비운다. 그 사이 나는 내 몫의 술잔을 황급히 내밀어 부딪치며 “짠”을 외친다. 너는 어지간히도 술이 줄지 않는 내 소주잔을 내려다보며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는 양해를 구하고 가글액을 챙겨 자리를 뜬다.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 얼굴을 비춰본다. 그새 수염이 많이 자란 것 같고 너는 돌아오지 않는다.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셔츠 두 번째 단추를 채웠다가 풀었다가 채웠지만 너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림 사이, 가게 벽모퉁이 안쪽 테이블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사람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을 흘끔 바라본다. 그 무리 속에 네가 있다. 그들은 너를 잘 안다. 그들은 너를 좋아한다. 너도 그들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처음 본 그들과 너 사이에 형성된 그늘 없는 동치 관계를 납득한다. 나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출구를 바라보며 미지근한 회를 몇 점 집어 씹었다. 흰 살에서 고요한 맛이 났다. 안쪽에서 더는 너의 들뜬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전부 사라졌다. 나는 너를 찾아 캄캄한 거리를 헤맨다. 조금 전까진 가을이었는데 어느새 눈송이가 떨어진다. 이 겨울에서 가을의 너를 수소문 하는데 거리에는 내게 비밀을 품은 사람뿐이다. 나는 발자국만 무수히 찍어 남기며 눈길을 헤맨다. 그 틈에 정결한 눈은 쉬지않고 내 흔적을 지우려한다.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동안 꾹 누르고 참아온, 너의 귓가에서 수없이 부르고 싶었던 그 이름이 무한 개 눈송이의 이름인 것처럼.
그리고 끝나지 않는 계절이 왔고, 너를 영원히 잃었다는 걸 수긍한다. 그게 이 꿈으로 내가 잠시 옮겨진 사건이 지닌 본뜻이라도 되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