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친구 박이 죽었다. 한 달도 더 떠밀려 왔는데 오늘 일 같다.

슬하에 어린아이가 둘. 첫째 아이에게 “아빠 병원 갔다 온다” 말하고 입원, 2주 뒤 더 이상 손쓸 게 없다는 의사의 냉랭한 말을 듣고 요양병원으로 전원, 그리고 며칠 만에 가만 멈췄다. 술이 문제였다. 그가 오래전 일했던 가게 사장님이 박의 어머니께 직접 들었다고 하니 틀림없을 것이다.

박과 나는 중학교 시절 친구다. 초등학교는 다른 곳을 나왔다. 우리가 어떻게 왜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서 집까지 거리가 50미터 남짓으로 가까웠고 당연히 등하굣길이 같았다. 우리는 중학교 부근 목 좋은 골목길에서 매일 담배를 나눠 피웠다. 학교 안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피우는 담배였지만 등교 전 흡연은 중차대한 선택을 동반했기에 거를 수 없었다. 등교와 가출과 자퇴. 나는 늘 박을 타일러 교실 의자에 앉혔다. (훗날 박은 고등학교 졸업을 100일쯤 남겨두고 결국 자퇴를 했다) 주말이 되면 밤새 함께 채팅을 하다가 해 뜰 무렵 목욕탕에 다녀왔다. 그리고 한낮까지 자고 일어나 부모님이 잘 돌아오지 않는 친구 H의 집에서 밥통에 라면을 불려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취했다. K의 아버지는 가끔 집에 들러 방 안에 뭉쳐 있던 친구 모두를 끌어내 마당에 엎드려뻗치게 하고 테니스 라켓으로 매질하다가 용돈을 쥐여주고 떠났다. 그 돈으로 라면과 담배와 술을 사고 노래방에 갔다. 외상값도 갚았다. 우리는 H의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을 놀이에 흥미를 더하는 황금열쇠처럼 생각했다. 정작 H는 아니었겠지만.

그 무렵 박은 본인의 주량을 늘리고 싶어 했다. 거기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몰라도 열과 성을 다했다. 소주 하루에 한 병 마시기. 지리한 저녁에 집 중간에서 접선할 때마다 박은 취해 있었다. 모두의 걱정 속에서도 성실히. 담배를 피우며 자랑을 했던 것도 같다. “오늘은 소주 두 병을 마셨지만 멀쩡해”라거나 “어제 소주방에서 Y가 취해 지랄하길래 버리고 왔어” 같은. 나는 절반의 얼굴로 핀잔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머지 절반은 추켜세워준 것도 같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나는 주량으로 다져진 긍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점을 옮겨가는 동안 술과 안주를 몰래 게워 내기도 했지만 그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냥 살려고. 하지만 박은 지지 않으려고 마셨다.

박은 록밴드 엑스재팬을 좋아했다. 작년에는 굳이 비싼 값을 치르고 소니 CD 플레이어와 엑스재팬 CD를 샀다. 그리고 또 굳이 새벽에 술 취해 전화를 걸어와 내게 들려주며 말했다. “야, 어떠냐? 확실히 소리가 달라.” 나는 당연히 비웃으며 맛깔나게 욕을 퍼부어줬다. 전화기 너머 소리를 두고 뭐가 어떠냐는 것인지. 솔직히 LP라도 되면 모를까, 카세트테이프에서 MD와 CD를 거쳐 MP3로, MP3에서 무손실 코덱까지 수십 년에 걸친 진보를 부정하는 반기술적 감성을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행복해했다. 그 엑스재팬 CD가 가품이고, 그는 사기를 당한 것이고, 그래서 참말로 ‘다른 소리’가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하긴, 고가의 건담 플라모델을 큰맘 먹고 주문했는데 건담에 장착하는 LED 조명만 받았을 때도 박은 반품을 하는 대신 동영상까지 찍어 보내며 자랑을 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점멸하는 LED였을 뿐인데. 그래도 다음에는 진짜 건담을 사서 이 LED 조명까지 달아 보여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는데, 그건 이뤘을까.

그의 아들은 나와 브롤스타즈 친구다. 친구였다. 다시 접속해 보니 아들의 이름이 사라졌다. 어느 설 연휴 저녁, 우리는 박의 집에서 브롤스타즈를 했다. 나는 제시, P는 에드거, 박의 아들은 콜트 캐릭터로 한편을 먹고 쇼다운에 참전했다. 나와 P는 무과금 고인물이었기에 제법 승률이 높았지만 박의 아들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박은 리니지 이후로 더는 게임을 하지 않아서인지 술이 덜 깬 채 우리를 지켜보며 한숨만 쉬었다. 하지만 박은 정말 그럴 자격이 없었다.

박은 동네에서 뽑기계의 전설이었다. 뽑기방이 유행하기 한참 전, 수많은 가게 앞 뽑기 기계는 밤새 불 밝히고 있다가 취객이라도 지나가면 발작하듯 요란한 음악을 쏟아냈다. 박은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모든 뽑기 기계를 순회했다. 그리고 인형은 싹 무시하고 찰흙 더미에 끼워져있는 고가의 상품만 몽땅 뽑았다.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박의 집에 들러 창고에 처박힌 마대에서 쓸만한 물건을 집어 왔다. P는 물놀이 때 가족과 타고 놀겠다며 초대형 보트를 가져갔다. 가족의 목숨을 뽑기 상품에 걸다니. 나는 박이 권하는 성인용품을 외면하면서 그의 뽑기 기계 공략 방법을 열심히 묻고 배웠다. 그리고 몇 번인가 그의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동네 뽑기 기계를 정복하러 다녔다. 그리고 그가 모든 것을 원 코인에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더는 아무것도 뽑을 수 없었다. 뽑기 기계 주인들이 박에게 그 어떤 상품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무엇을 더 기억해야 할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박의 헤어진 여자 친구와 사귄 일이 있었다. 박은 내게 S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술에 취해 부탁했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몇 차례 따로 만나 설득과 회유를 시도했다. 그리고 어느 육교 위에서 S는 내게 박과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박은 화내지 않았다. 그때도 한숨은 쉬었던 것 같다. 술도 많이 마셨겠지.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토바이를 한 대 샀다고 한다. 가게 사장님 말로는 누워서 타는 오토바이를. 그걸 타고 동네 어귀를 달리다가 사고가 나서 한동안 다리를 절며 다녔다고 했다. 이 사실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박의 전화는 항상 “나여.”라고 시작했다. 그리고 염려 어린 질책을 할 때마다 “야, 걱정 마. 나여.”라고 말했다. 그 시시껄렁한 허세가 나는 좋았다. 웃음이 났다. 그런 네가 세상에 없어져서 쓸쓸하다. 나는 어제도 엊그제도 조금 전에도 다양한 이별을 했지만 그건 발목을 적시는 얕은 물이니까 조금 지나면 잘 마르겠지. 그건 그것대로 물비린내가 남겠지만, 너는. 너는 새벽마다 여전히 내 방 창문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여긴 15층인데. 고개를 삐죽 내밀면 작고 앳된 네가 목욕 가자고, 빨리 아버지의 목욕탕 정액권을 훔쳐 나오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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