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조로운 육식동물로 퇴화하고 있다. 먹이를 물고 찢는 송곳니가 발달하는 중이고, 질긴 음식물이 끼어 이가 상하는 일이 없도록 치간이 넓어지는 중이다(이놈의 잇몸병). 이런 변화를 알아차린 건 사흘 전이다.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면서 초원의 식단으로 식사하던 중, 혀를 질겅질겅 씹어버렸다. 턱을 닫는 속도가 빠른 것인지 혀가 물러나는 속도가 느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심각했다. 날카로운 이가 혀 뒷면에 파고들어 ‘혀밑신경’을 파괴하였으며 ‘설고유근(舌固有筋)’의 일부를 절단해 버렸는지 세밀한 움직임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혀부터 식도 초입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가위로 혀를 잘라낼 때 느꼈을 고통에 비할 만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침 삼킴과 대화, 식사, 흡연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소 키스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키스를 잘하려면 상대방의 입안에서 혀로 종이학을 접을 수 있어야 한다는데 지금 상태로는 밀어 넣기 동작조차 불가능하다.
이번 사고를 통해 나는 육식동물에게 살육죄를 물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혀를 씹듯 약하고 느린 동물을 씹을 수밖에 없다.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렝게티 초원으로 달려 나가 산양을 날로 잡아먹게 될 것이다. 물론, 달리기가 느린 나로서는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먹는 하이에나와 동일한 습성을 가진 어떤 종(種)의 기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마비된 혀를 내민 채 어으어으 울어버렸다. 그런데 육식동물도 자기 혀를 깨물기도 합니까?
한동안 피가 멎지 않아서 약 3년 만에 약국을 찾았다. ‘오라, 오라메디’라도 발라야 견디고 살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스도 하고. 약사에게 입안 상처에 바를 약을 달라고 하자, 그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연고를 내밀었다. 카미스타드겔(Kamistad-Gel)? 나는 묻고 싶었다. ‘오라, 오라메디’는 중간이윤이 적어서 이걸 주는 거냐. 이거 정말 검증된 약이 맞는 거냐. 하지만 더 이상 혀를 놀리면 장애가 올 것 같아서 값을 치르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몇 분 뒤 미소 지었다.
만약 당신이 멍청하게 담배를 거꾸로 물어 입술을 데었거나, 체중감량의 후유증으로 보여 질만큼 안쪽 볼을 잔뜩 씹어먹어 버렸거나, 혀에 붕대를 감아서 목구멍 속에 길게 잘 뉘어 두고 싶어질 만큼 통증이 있을 때, 나는 이제부터 카미스타드겔(Kamistad-Gel)을 권한다. 상처 부위에 바르자마자 ‘리코카인’이라는 국소 마취 성분이 통증을 싹 없애주며 제법 상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오라메디에서 불쾌하게 느껴졌던 입안의 끈적임 혹은 이 사이에 낌 현상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상처 보호 효과와 통증 감소의 지속성에 의문을 품거나 불안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이걸 바르고 그냥 종이학을 접으러 달려가면 된다. 어쩌면 이 연고의 원래 이름은 카마수트라겔(Kamastura-Gel)이 아닐까. 제조원을 확인해 보니 ‘STADA OTC Arzneimittel GmbH, Stadastr 2-18 D-61118 Bad Vibel, Germany’라고 쓰여 있더라. 독일 STADA社에서 만들고, 진양제약에서 수입 및 판매 중. 짐작하겠지만, 나한테 광고를 맡길 리 없으니 안심하시길.
그런데 ‘이 약 좀 빨아 먹을만하네’라고 생각했는데, 감미제인 ‘삭카린’이 함유되어 있더라. 뭐, 이 정도야 괜찮겠지. (카미스타드 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