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육쌈냉면 옆 골목 안에서 숨어 있던 여자가 길 가던 나를 갑자기 끌어안으며 칭얼거렸다. 나는 체한 마음을 달래듯 등을 쓸어줬다. 여자의 체온은 높았다. 팔을 붙잡혀 끌려들어간 음식점에서 고량주를 앞에 두고는 소금기 머금은 말을 뱉다가 자주 팔매질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사람처럼 여자는 행동했다. 나는 여자를 달래주지 않았다. 못된 남자처럼. 내가 측은한 마음으로 속삭인다면 여자는 결국 스스로 확신할 만큼 참으로 사소해질 것이기에. 대신 나는 뒤꿈치를 들고 아주 먼 곳으로 가, 혼자 속상해 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가치의 변절과 나

다시 문서 파쇄. 집 안에 모셔둔 문서 대부분을 파쇄했다. 낱낱이 살펴 쓸모에 따라 분류하는 데만 나흘이 걸렸다. 어떤…

한국에 놀러 와요, 니가

독일에 놀러 와요. S는 말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독일에 갈 리 없다. L과 K는 어쩌면 독일에…

구조조정

어두운 그림자가 또 다녀갔다(그림자의 수식언으로 ‘어두운’ 만큼 쓸모없는 게 있을까 싶지만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평소 이곳을 열어볼 때마다…

식물 긴근(長根) 씨

식물은 잘 지낸다. 이름은 긴근(長根)이다. 길고 깊게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 시인이 자꾸 떠오르는데 그건 너무 오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