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걸려온 전화는 당연히 못 받는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알만한 친구 김천기가 부재중 통화 목록에 이름을 남겨 놨다. 오래 소원했던 터라 친구의 이름마저 낯설다. 회사 일로 근처를 지나가다 내 생각이 났던 걸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용무가 궁금했지만 다시 걸어보지 않았다. 유년기를 떠올리는 건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달콤한 것은 질병이다. 몸에도 마음에도. 친구의 이름을 잠깐 들여다본 것뿐인데, 레스토랑 <미네르바>를 떠올려 버렸다. 게이(라고 소문이 돌았던) 사장님과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 Y. 그 둘은 영업을 마치면 가게 안 쪽방에서 함께 잤다. 친구들은 돈가스를 주문하면서 Y에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까지 허락했는지 짓궂게 물었다. 그런 기억은 어쩐 일인지 지독히 잊히지 않는다.
천기의 딸은 올해 일곱 살쯤 되었을까? 그나저나 세이클럽에서 채팅으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기막히다. 자랑스럽게도 이런 재주꾼이 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