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21103 (토)

상록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하나같이 의욕이 없어 보였다. 이런 권태를 내가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한 아이가 활동지에 손 글씨로 매춘부라고 썼다. 저렇게 작은 아이가 매춘부라는 낱말을 알고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매춘부가 아니라 미술부였다.


20121107 (수)

내 생애 처음으로 결제한 영화가 《마법 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더빙판)》이라니! 이거 소장해서 무얼 하나.


20121109 (금)

수능이 언제지? 내일인가 모렌가. 오늘이 며칠인데? 칠일인가 팔일인가. 그럼 오늘이 칠일이고 내일이 수능인가 보다. 딱 그랬다. 내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이다. 나와 수염 이와 아웃도어 유는 흡연구역에서 십수 년 전 수능날을 떠올리며 오래 이야기했다. 요즘도 시험장 복도에 모여 담배를 피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여전히 시험이 끝나고 영화를 보는지도 다들 궁금해 했다. VHS 비디오테잎이 사라진 세계에서도.


20121110 (토)

구글플러스 주변소식에 인피니트팬레터라는 태그를 단 손편지가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예쁜 마음이지만 뻔히 좋은 것만 좋아하는 마음은 덜 예쁜 마음이다. 원래 더 예쁜 아이들이면 좋겠다. 문득 인피니트 소속사가 왜 이토록 한산한 구글플러스에서 마케팅을 하는 건지 의아하다. 토요일이지만 아침에는 지하철 9호선도 4호선도 한산하다. 좋다. 나는 대체로 한산한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20121111 (일)

나욧아카데미 지역아동센터. 선한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선한 사람이 되곤 하는데, 웃고 에두르고 맞장구 치고 조아리면서도 기분 하나 안 상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20121114 (수)

인사하고 싶었어요. 뜻대로 되지 않았죠.


20121115 (목)

어느새 캄캄하다. 미래는 엊그제 꾸어 이미 다 쓰고 빈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두 손만 허튼 장난을 치고 있다. 다음 해가 와 봄이 되어도 나는 누군가의 대관식에서 밥을 얻어먹을 것이다. 나를 피해자 틈에 뉘이고 방치한 사람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아무 도리가 없다. 매일 밤 애원하는 내 얼굴을 본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 당신도.


20121115 (목)

한 시인이 쓴 산문집의 표사를 읽었다. 좋은 시를 쓰기로 유명한 시인들이 폼 잡고 적은 표사였다. 그런데 이 표사라는 게 영 허황하다. 한 권의 산문집이 주술성을 지니거나 세계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0121115 (목)

내가 한 사람을 어디까지 불행하게끔 만들 수 있을까. 소매에 뭍은 얼룩처럼 우리 기억을 눈물에 담가 비비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다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슬퍼할 여유조차 없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까.


20121116 (금)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스럽지만, 공공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서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말아 주세요. 찔끔찔끔 나와요.


20121120 (화)

편의점에서 김치사발면에 물을 부어놓고 3분을 생각한다. 면발 익는 시간이 단 30초라도 더 길었다면….


20121125 (일)

아가세 지역아동센터. ‘도전! 독서 골든벨’이 열렸다. 한 남자아이가 답이 틀리자 답안지를 구겨버리고 엎드렸다.


20121127 (화)

이렇게, 간다. 인제 축하를 받아도 괜찮은 것인지 갸우뚱하다. 내년 생일에는 다 함께 곡을 하자.


20121128 (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강독수업 도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께서 밖에 나가 이유를 물었더니 교과부에서 강의 실사를 나왔댄다. 도대체 왜 교과부가 강의를 둘러보고 다니는 걸까. 미친 거 같다. 교과부는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기관인가.


20121130 (금)

아이들은 웃어야지. 시끄럽게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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