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네가 덜컥 엎지른 슬픔이 여기까지 스몄나. 내가 눈 감고 너의 연애사를 끊임없이 복기하는 동안 네 몸은 차츰 어두워지다가 꺼졌다.
― 무슨 일이야?
― 퓨즈가 나갔나 봐. 어떤 감정도 켜지지 않아.
나는 더듬더듬 너를 찾기 시작했다.
― 어디야?
― 여기.
― 어디야?
― 여기 있어.
― 어디야?
― 이쪽.
― 어디야?
― 나도 모르겠어.
― 그럼, 거기서 움직이지 마.
― 응.
나는 몸을 켰다. 깜빡깜빡.
― 내가 보여?
― 거기 희미한 게 너야?
― 응.
― 반딧불이 보다 조금 밝은 게 너야?
― 아마도.
― 예전에 쫓던 빛은 참 환했는데….
― 미안해.
― 아야!
― 왜?
― 뭔가에 걸려 넘어졌어.
― 다친 덴 없어?
― 네 주변은 불편해서 그만둘래. 그만 집에 가야겠어.
코발트 빛 어둠은 반투명 속치마가 되어 이불속에서 막 빠져나온 네 몸에 감겼다. 너는 확실히 과거와 더불어 떠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가지 마. 넌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모멸감을 느꼈다. 솔직히 네가 깜짝 놀라거나 겁먹지 않을 정도만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런데 왜 자꾸 눈이 스륵스륵 감길까. ‘죽음보다 깊은 잠(박범신의 소설 제목이다)’의 축복이 내게도 오려나. 너의 무심한 말에도 딸칵 멈추던 심장은 무시해도 괜찮을 만큼 아팠다. 그냥. 그냥, 여기 있어! 내 말을 듣지 못한 걸까. 아니면 내가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걸까. 잠깐 사이, 찬 기운 서린 네 몸에서 담황색 오로라가 비어져 나왔다. 이것은 진작 예견했던 너의 부재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까? 이런 불안으로 나는 자칫 끔찍한 말을 뱉을 뻔했다. 가지 마, 제발…. 하지만 너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돌이켜보니, 너는 나와 달리 ‘제발’이란 말을 여러 번 했던가. 보내줘. 부탁이야, 제발. 그건 부탁이 아니었다. 똑같은 말의 쓰임에서 조차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기분 좋을 턱이 없다. ― “남자의 병. 남자들이 가진 자기 모멸이라는 병에 대하여는 영리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청하, 1999, 212쪽)
성가신 꿈이었나.
나는 내 품 안을 확인한다. 다행히도 너는 ‘아직 여기’ 있다. 나는 너의 목뒤에 조심조심 왼팔을 끼우고, 사라진 너를 애틋해한다. 그럼에도 쓴 기억을 딛고 가버린 너의 조각이 결코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앞으로의 치명적 상처에 대비하도록 지분덕거리지 마라. 제발. 옛사랑아, 제발.
― 깼어? 피곤했는지 코 많이 골더라. 좀 더 자.
나는 너의 목이 졸리는 걸 잘 알면서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이런 레슬링 기술이 있었나? 그리고 숨을 한껏 들이쉬어 너의 귓가에 솔솔 불었다.
― 간지러워.
이런 레슬링 기술은 없다. 난 네 머리카락에 볼을 비비며 조금씩 밝아오는 방안을 둘러봤다. 이곳이 조금 변한 것 같다. 나 자신조차 생소한 시간 속에서 오로지 너만이 익숙하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조바심 내지 않기로 한다. 시간이 아직 좀 남아있다. 언제 우리가 단절될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이대로 무작정 끝은 아니다. 그것만은 선험적으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