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오늘도 대학원 열람실은 평화롭다. 카키 비니 남자는 의자 바퀴가 흔들리도록 다리를 떨고 있다. 노란 점퍼 남자는 의자를 한껏 뒤로 빼고 앉아서 양 옆자리를 자꾸 엿본다. 검은 코트 남자는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의자 머리 받침을 짚는다. 갈색 재킷 남자는 스테인리스 컵에 커피믹스를 탈탈 털고 손가락까지 퉁기더니 뜨거운 물을 받으러 나갔다. 내 옆자리에는 짙은 베이지색 점퍼가 한 장 걸려있다. 책상은 비어있다. 뒷자리에는 분홍색 에코백이 하나 놓여있다. 책상은 비어있다. 그리고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누군가의 바짝 마른 서클 렌즈가 굴러다닌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반지하의 정서(情緖)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앞까지 볕이 기어 왔다가 달아난다. 나는 놀리기 쉬운 술래다. 몸의 절반을 반지하에 묻고 난…

인생은 보물찾기

대면수업도 5주차가 지났다. 그사이 강의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즐거워 보였다. 마스크를 들쳐 턱만 드러낸 채 음료를 마시고 마스크를…

불안을 암매장하는 새벽

어째서, 책상 위를 정리하면 방바닥이 더러워지고 방바닥을 청소하면 다시 책상 위가 너저분해지는가. 왜 하나의 불안을 덮어버리면 다른 하나가 드러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