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앉아 있는 자리 앞까지 볕이 기어 왔다가 달아난다. 나는 놀리기 쉬운 술래다. 몸의 절반을 반지하에 묻고 난 뒤부터 지상의 모든 찬연(粲然)에 쉽게 약이 오른다. 성난다. 낮은 먼 곳에서 잠시 기웃거리다가 이국(異國)으로 떠나고 밤은 이윽고 내 옆에서 외출 준비를 한다. 바깥 온도는 여러 날째 영하다. 나는 밤을 좇아 목도리를 단단하게 두른다. 어머니가 지난겨울에 손뜨개 한 꽈배기 목도리다. 아니다. 꽈배기 목도리가 아니다. 아니, 그게 아니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할 줄 모른다. 아니다. 어머니는 없다. 나는 기원(起源)이 없다. 그 사이 밤은 지평선에 걸친 창으로 외출하여 지평선을 까맣게 지운다. 나는 밤을 추적할 방법이 없다. 최근 나는 낮도 밤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했다. 밤은 다른 밤을 찾아 지구를 일주 한 다음에나 돌아올 것이다. 나는 냉한 방 안에 혼자 남아 넘실넘실 밀려드는 토사물 냄새를 맡는다. 개들이 흘레붙으며 시내 방향으로 걷다가 감옥 문지기의 눈으로 나를 본다. 미처 풀지 못한 목도리 탓에 숨을 헐떡거린다. 와중에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것들은 내 낮은 손을 핥아주지 않는다. 젠장. 나는 전기장판 위에 몸을 뉘고 만화경만 한 창을 올려다본다. 별. 하나쯤 있어도 될 법한데. 시내 중심에 떠 있는 애드벌룬의 불빛이 내가 누워 있는 곳 앞까지 왔다가 간다. 이 애드벌룬의 주인은 불야 관광나이트의 주인과 동일인이다. 그는 절구모텔(최신식 러브 절구 완비)과 포옹웨딩홀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 주인의 권능이라면, 불야 관광나이트에서 하룻밤 동안 동명이인이 되어 술을 마시다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이성과 서로를 부축하여 절구모텔의 볕 잘 드는 방을 얻고 드러누워 한동안 희롱하다가 포옹웨딩홀에 함께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치 삼등품 나무토막 둘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한 바퀴 순회하면 잘생긴 원앙 한 쌍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나는 더 깊은 지하로 가라앉으며 몽상한다. 불야의 지하를 꿈꾼다. 불야.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불야’를 둥글게 발음하고 스르륵 잠이 든다. 밖의 냉기만큼 내 몸의 온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시간상으로 아침이 왔다. 밤은 내 곁에 누워있다.
― 비가 내린다. 창을 닫아라. 책이 젖는다. 곰팡이는 내게 기생한다.
나는 밤의 말을 듣고도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당겼다. 밤의 목소리는 들떠있다. 밤은 오늘 이른 시간부터 외출준비를 할 것이다. 나는 이불 속에서 꽈배기 목도리를 둘렀다. 이 저녁에는 나도 꼭 밤을 따라나설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겠다. 이 안의 모든 것은 반드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는 불의 아가리에 가장 먼저 삼켜지는 책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다. 나는 목격자의 지위를 스스로 파기하고 당신의 집으로 갈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권능으로 내가 당신과 당신의 권능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인가. 나는 다른 나를 찾아 지구를 일주 한 다음에나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