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대면수업도 5주차가 지났다. 그사이 강의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즐거워 보였다. 마스크를 들쳐 턱만 드러낸 채 음료를 마시고 마스크를 한쪽 귀에 건 채 막대 사탕을 빨면서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한 자리 띄어 앉기를 지켜달라는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친구와 손을 마주 잡고 조잘댔다. 강의실 문틈으로 반가운 얼굴이라도 보일라치면 근육들의 OECD 격인 엉덩이가 제 체면도 팽개치고 표정근을 따라 의자에서 들썩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건 원래 너무 기쁜 일이라는 듯 마스크 너머에서 입꼬리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서로 외딴곳에 앉아서도 눈빛을 주고받고 남의 혼잣말에 다정히 대꾸해주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그걸 구경하는 게 흐뭇하다가도 귀갓길을, 집으로 돌아가는 그 요원한 길을 떠올리면 울상이 됐다.

그래도 나는 생의 의지를 총동원하여 즐거움을 찾으려 애썼다. 이 세상에 신이 있고, 신이 무언가 역할을 맡고 있다면, 소풍날의 보물찾기 담당자쯤이 적당하다. 세상이 고차원적 보물찾기 경쟁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고서야 나만 혼자 이제껏 기쁨을 얻지 못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모든 부조리는 내가 굼떠서 남들이 보물을 몽땅 찾아 떠난 숲에 혼자 남겨졌기 때문이다. 신조차 없이. 그래도 혹시 아무도 찾지 못한 보물이, 누군가 “에계계” 하며 구겨버린 보물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나도 미련한 미련을 피우며 계속 찾다 보면 공책 한 권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늦은 오후다. 사위는 아직 밝다. 학교 안 작은 축제를 둘러보고 돌아오다가 햇볕에 그을린 마냥 새카만 돌에 이끌렸다. 화단을 가로질러 너르고 평평한 윗면에 손을 얹었더니 개나리꽃 봉오리 틔운 계절보다 한결 더 따뜻했다. 그래서 냅다 누워 눈을 감았다. 돌의 체온이 건너왔다. 돌도 중심까지 따뚯할까, 같은 생각을 하는 동안, 눈꺼풀 너머로 작은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여 다가왔다. 그리고 입술 옆에 풀썩 앉았다. 꽃가루를 다리에 잔뜩 묻힌 호박벌 한 마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투시와 피사체 확대 보기 초능력이 생긴 것처럼 생생했다. 신체능력까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극대화되어 배 근육을 살짝 튕긴 것만으로 돌 주변에서 벗어났고 손바닥이 입술을 비롯한 얼굴 절반을 타격했다. 그 순간 흰 꽃잎이 유연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모습이 번쩍 뜨인 눈에 들어왔다. 그 시간이 어찌나 긴지 어느 한 계절을 다시 산 것 같았다.

복사앵두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잎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게 내 보물 같은 걸까. 공책으로 바꾸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예쁘다. 한 나무가 전교생에게 열댓 장씩 떼어줘도 남을 만큼 잎이 많을 텐데, 그러면 그냥 꽝이 아닐까. 그래도 예쁘긴 하다.

너도 하나 주고 싶어서 책갈피에 끼웠다. 이곳 어디에도 없는 복사앵두나무의 잎이니까 곁에 없는 너도 어디선가 매 순간 꽃잎을 받아 쥔 사람처럼 기뻐했으면 좋겠다.


덧붙임. 꽝이라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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