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은 문서 세단기와 보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세단기를 끼고 엉덩이가 저릴 때까지 파지를 밀어 넣었다. 종이 파쇄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이다.
책상 위 모니터 안에선 재난이 이어졌다. 전날에는 화산과 토네이도가 두 도시를 각각 지워버렸다. 이번에는 소행성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세단기의 조그만 창으로 종이가 짓이겨져 낙하하는 것만 지켜봤다. 이 서류뭉치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면 나는 벗어난다, 작은 멸망을 끊임없이 소원케 했던 것으로부터 완전히 면한다, 이런 내심으로 종이의 쇄편들을 관망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