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가 난데없이 집에 왔다. 나는 눈가를 비비며 어쩐 일이냐 물었다. P는 떠름한 표정으로 아직까지 잤느냐 물었다. 나는 방안으로 앞장서며 근처에 볼일이 있었느냐 물었다. P는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면서 밥은 먹었느냐 물었다. 나와 P는 각자 입장에 적당히 걸맞아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의 물음들에 대해 대답만 도맡아줄 사람이 금방 오기로 한 것처럼 문밖을 내다봤다. 나는 냉장고에서 팩 음료를 꺼내 P에게 건네고 욕실에 갔다. 머리카락을 대충 정돈하고 나왔다. 그동안 P는 스무 개의 녹색 서랍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P는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를 들어 보이며 이건 뭐냐 물었다. 나는 상자 속 그림을 가리키며 로모를 모르냐고 물었다. P는 그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로모 카메라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냐고 반문했다. P는 혼잣말로 로모를 발음하고 그 카메라는 어딨냐 물었다. 나는 한참 가만히 서 있다가 모른다고 지금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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