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1 (목)
그토록 내보이고 싶었던 감정은 두려움을 주는 것이 되었구나.
20190803 (토)
나 때문에 이 여름을 망친 사람이 있다. 그 죄로 자꾸 걷는다. 몸이 식은 다음에야 비 뒤로 숨고 열이 오른 다음에야 빛 아래를 통과한다. 돌아갈 집은 아득하지만 여름의 사람은 족쇄의 철구처럼 발치에 있다. 그것을 끌고 실긋실긋 나아갈수록 내 마음은 한결 투명해진다. 나를 보아준다면 이제 환히 알 수 있을 텐데.
20190804 (일)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 너의 긴 정리가 드디어 끝나기라도 한 듯 갑자기 진동이 울리곤 한다. 반가운 고장이다. 너일까 집어 들고 너일까 살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꿈에서도 휴대전화는 고장이고 거짓 진동이 온다. 더 실망하고 싶지 않아 낡은 휴대전화로 유심을 옮겼다. 반가움도 실망도 함께 사라져버렸고 나는 본래대로 수몰된 마을의 파수꾼 같은 혼자가 되었다.
20190805 (월)
사이버 강의를 수락했다가 위기를 맞았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설명하듯 읽는 것뿐인데 도무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입맛을 쩝쩝 다시기도 한다. 25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최소 10시간을 쏟는다. 사이버강의 공개 날짜는 다가오는데 어버버 할 때마다 매미만 자꾸 크게 운다. 유투버는 존경 받을만하다.
20190806 (화)
열람실에 고깔모자를 쓴 아저씨가 있다. 신문을 접어 만든 고깔모자를 쓰고 뭘 열심히 읽는다. 왜일까 왜일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피라미드 신비주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믿거나 말거나, 피라미드 내부의 2/3지점에서는 온갖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무뎌진 면도날이 별러지고 음식은 부패하지 않고 식물의 발아와 생장을 촉진하고 질병도 치료하며 의식계발과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전설의 썰이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왜 고깔모자를 쓰겠어?
20190806 (화)
우리가 주고받은 메시지를 자꾸 열어 본다. 저 낱말은 고쳐 쓰고 저 문장은 지우고 싶다. 이 대화방에서 나가버리면 거의 가득한 웃음과 짧은 망설임과 큰 질량의 슬픔을 몽땅 내 안에 보관해야 할 것이다. 감당할 수 없다, 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빈방에 자주 들러 오래 웅크리다가 돌아 나오길 반복할 것이다.
20190807 (수)
지난주에는 마주치려 헤매었는데 이번주에는 마주칠까 달아난다. 우습다.
20190808 (목)
이달 12일까지 사이버강의 총 13주차 중 8주 분량을 전달할 것. 16일까지 나머지 5주 분량을 마무리할 것. 그냥 죽을 것.
20190810 (토)
내가 바라는 것이 될 수 없다면 무슨 짓이 무슨 소용일까.
20190811 (일)
기억에 관한 글을 쓰지 않고부터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에 관한 이야기도 나에 관한 이야기였으므로.
20190814 (수)
건강히 잘 지내라고 말하지 말 걸 그랬다.
20190817 (토)
지금쯤 너는 가버렸을까. 인사도 없이. 거리를 헤매지 않으면 이제 무얼할까.
20190825 (일)
개강을 하루 앞둔 사람이다. 나 혼자 너를 시작하네.
20190826 (월)
개강. B대학 담배 동산에서 오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