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ㅂ씨는 “미운 사람들 좀 버리고 올게요.”라는 코멘트를 남기고 길을 떠났다.

출발 전, ㅂ씨가 침낭과 버너를 짊어진 채 걷기만 하는 일정을 내게 보였을 때 나는 잇몸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8월 한복판에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태양과 맞서 걷는 것 따위로 달라지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사실 내가 해 본 적이 없으니 정말 달라지는 게 없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등산용품점에서 일회용 우의를 사라는 조언과 약국에서 해충 방제 스프레이를 구매하라는 충고 정도는 꼭 따랐어야지.

엉터리 준비로 강행한 ‘미운 사람 불법투기 계획’의 첫날, ㅂ씨는 소나기를 맞으며 소읍에 들어서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어느 마을의 노인 회관 앞에 놓인 소파에 누워 또 한 번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 거리낌 없이 웃으면서 “선배, 오늘은 좀 더 많이 걸었어요.”라고. 과연 기분은 나아졌을까? 나도 떠나야 할까?

내 주변의 사람들. 가만히 떠올려 보니 줄곧 비정상적인 세계 속에서 지내왔다. 시 잘 쓰는 A씨, 시 열심히 쓰는 B씨, 시만 쓰는 C씨, 시도 쓰는 D씨, 시랑 사는 E씨, 시로 말하는 F씨, 시를 잘 읽어주는 G씨, 시보다 수상소감을 잘 쓰는 H씨, 나중에 다시 시 쓰려는 I씨, 이제 시 안 쓰겠다는 J씨, 첫 시집을 낸 K씨, 두 번째 시집을 펴낼 L씨, 너무 높은 곳에서 시 쓰는 M씨 등등. 소설이라는 게 언더 장르인 세상에 잘못 떨어진 게 아닐까 착각이 들만큼 하나같이 시만 쓰며, 아프고 가난하다. 그리고 슬픈 노래를 참 잘도 부른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내 곁의 사람들에 대해 묻곤 한다. 대충 알 만한 사람들의 근황을 전하면 어머니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마치 자기 자식처럼 걱정을 한다.

“어째 죄다 남들만큼 평범하게도 못 사냐?”

한편으로는 착한 우리 자식의 잘못은 죄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고 계신 나의 부모님은 그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또 누군가의 이상한 주변으로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어이.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냐? 다들 좀 적당히 하라고. 평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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