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가로등 빛이 잡아 끌어 바닥에 내려놓은 나무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서늘한 바람에 나무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 멀미가 인다. 지나가는 사람의 등 뒤를 흐린 눈으로 좇으면서 사람 얼굴의 형상을 떠올린다. 뒤통수에 가면처럼 걸려있는 얼굴은 하나같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없다. 저 길 건너 버스 정류장에 삐딱하게 서 있는 노랑 머리 여자아이의 척추 건강보다도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 기억 속의 사람들.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시간 속의 사람들. 그들은 태운 버스가 한 대 지나간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책방무사의 처음 보는 여름

책방 무사 주인 요조는 작은 일에도 공을 들였다. 길 건너에 내어둔 화분은 해의 기울기에 따라 책방 가까이 옮겨졌다.…

가을엔 두 번쯤 멜랑콜리

여자는 나를 돌아봤다. 그 순간, 지구를 삽시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유성이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파편, 2020년 03월

20200303 (화) 조카3호 인스타그램이 추천계정으로 떴다. 신입중딩그램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사진이 없다. 뉴비라서 친구가 열 명도 안 되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