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나와 함께 경주해 온 데스크톱 컴퓨터가 찢어지는 비프만 남기고 죽어버렸다. 나는 씻으려고 하면 심술이 나는데, 컴퓨터도 휴지통을 깨끗이 비우면 고장이 날 수 있구나. 참말 경이적 경험이다. 전자기기는 역시 신뢰할 것이 못 된다.

내 오랜 컴퓨터 매장 노역과 수리 경험으로 여러 가능성을 요리조리 분석해 봤다. 화면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음, 10초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비프, 파워 팬과 CPU 쿨러와 LED 점등으로 미루어 전원부 이상 없음, 하지만 하드디스크 회전음은 들리지 않음. 이런저런 증상으로 추정한 고장 원인은 메인보드 이상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하드디스크도 데이터를 가득 머금은 채 숨졌을지 모른다. 어찌 수술을 해야 하나. 메인보드 여분이 없으니 별 도리도 없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척 적어 내려가고 있지만 슬프고 불안하다.

이맘때다. 찬 바람이 조금 더 불었던가? 밤새 작업한 문서들을 저장해뒀던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인식 오류를 일으켰다. 이튿날까지 낑낑거린 끝에 간신히, 감격의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간신히 데이터를 복구해냈지만 입술은 이미 터져 있었다. 그리고 한 일주일간은 충격과 공황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날의 문서들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나의 오늘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 훨씬 더 그럴듯한 모습일 거라고.

우리가 발 담근 21세기나 먼 훗날 큰 홍수가 다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노아(Noah)는 방주 안에 자신의 가족과 각각 한 쌍의 동물만 실을 것이다. 나의 데스크톱이나 하드디스크는 새롭게 도래한 인류가 거대한 파충류를 때려잡을 때나 쓰이리라. 나는 어쩌면 너무나도 무용한 일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이상한 핑계만 머릿속에 가득해서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죄다 슬퍼진다. 지금까지 세상은 내 글이 드러나지 않아도 불편 하나 없는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이 부고를 가장 먼저 접한 ㄱ씨는 “글만 열심히 쓰라는 하늘의 뜻”이라며 멋대로 신의 의중을 단정 짓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며칠 전 ㄱ씨는 공감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애도의 눈물을 흘리게 할 만큼 슬픈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애인 ㅇ씨의 컴퓨터가 인터넷이 안 된다며 여러번 원인과 응급처지 요령을 물었다. 심지어 출장 수리를 부탁하더라. 그런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걸까? 두 번째로 소식을 접한 ㅂ씨는 메신저로 땀 두 방울(;;)을 흘리고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그에게는 영화 보다가 잠드는 일이 더 시급했으니까. 이해한다. 세 번째 ㅈ씨는 아주 유쾌·상쾌·통쾌한 웃음을 날려주시더라. 날 걱정해 주는 건 착하고 아름다운 ㄱㄷㅎ씨 뿐이었다.

그들은 아직 모르는 것뿐이다. 여러분, 당장 눈앞에 컴퓨터가 켜지지 않으면 굉장히 큰 문제가 생긴다니까요? 내 복잡한 심경은 아무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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