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거주 중인 모某씨는 명절이 오기 달포 전부터 앉으나 서나 걱정뿐이었다. 가끔 맑은 정신이 돌아오면, 하루에 15센티미터씩 다가와 머리통을 포위하다가 명절 0시 0분 0초에 일제히 작동하는 ‘4방위 전동드릴’을 고안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4방위 전동드릴이 작동하기도 전에 고향行 열차에 몸을 실었다. 플랫폼에 선 모某씨가 만약, 안전한 ‘노란 선 안쪽’과 안전치 못한 ‘노란 선 바깥’을 확실히 구분할 능력이 있었다면 모든 상황은 간단히 끝이 났을 것이다.
모某씨는 오래전부터 “고향은 나쁜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거운 물음에 답하기 위한 생각의 자세 – 6 패키지’도 이 과정에서 고안해 냈다. 숙고의 결과, 고향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현 위치에서 고향까지 거리에 이동 결행 날짜에 따른 붐빔 정도(‘명절 및 국경일 채점표 1’ 참조)를 곱하고 친인척 접촉 횟수를 제곱하면, 그 값만큼 악(惡)에 가까워진다는 공식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모某씨의 한가위 이동은 파키스탄의 연쇄살인범 ‘자베드 이크발로’만큼 악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자베드 이크발로는 1999년까지 6~16세 소년 100여 명을 살해하고 염산으로 녹여 하수구에 폐기했다) 물론, 빨간 고깔을 쓴 난쟁이가 밤새 퍼먹고 도망친 게 분명한 빈 밥통이나 사라진 반찬과 아침마다 마주할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방안에서 담배를 못 피우고, 조카들은 떠들거나 말을 걸거나 무시하고, 낮잠에 빠진 사이 아버지께서 불에 달군 인두 같은 눈빛으로 패배자 낙인을 이마에 찍어버리고, 밭일 혹은 그와 비슷한 노역에 동원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튼 모某씨는 큰맘 먹고 형의 신용카드로 몰래 결재한 새마을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안에서 ‘후랑크’를 씹으면서 랩탑으로 미국 드라마를 한 편 시청하고, 남은 시간에 아주 교양 있는 서울 사람답게 책을 꺼내 읽었다. 비록 몇 분을 못 버티고 잠들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향 경계 안으로 열차가 머리를 밀어 넣고 있었다. 모某씨가 가방을 챙기는 동안 앞자리의 여자도 선반 위에서 짐을 내렸다. 황금빛깔 배가 탐스럽게 인쇄된 과일상자와 서너 개의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발견하기 이전부터 모某씨는 여자가 참 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와줄까 말까 흘끔거리다가 그냥 지나쳤다. 선한 의도를 가진 행동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없어지고 실천이 어려워진다. 그 대상이 호감을 품을만한 외형이라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조심스러워진다. 그 순간 ‘난 정말 비호감형이라서 다행이야’라고 모某씨는 생각했다. 그리고 모某씨는 집으로 향했다.
아들의 귀환을 기다려온 어머니는 돼지등뼈를 고아 만든 국과 색색 채소 반찬이 놓인 상을 내주었다. 허허. 입안에 침이 잔뜩 고이는 맛난 것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한동안 맛본 적 없는 즐거움으로 뱃속을 잔뜩 채우고 담배를 피기위해 골목으로 나가는 사이, 고향집에서 여러 날 몸을 뉘어야 한다는 것이 벌써 근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