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가 뛰어 들어왔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지루한 평화는 그녀의 젤리 슈즈에 의해 손 써볼 틈 없이 무참하게 짓밟혔다.
“야, 야! 50만 원. 50만 원 받으러 가자. 얼른 일어나. 아이고, 발써 시작했네.”
해가 빼꼼이 뜬 뒤에야 귀가해 낮잠에 빠져있던 모某씨는 김 여사의 다급한 음성에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덜 깬 다리는 고개의 방향을 쫓아서 이쪽저쪽 비틀거렸다. 마치 방안에 둥실 떠다니는 50만 원을 움켜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50만 원? 웬 50만 원? 기우뚱하는 몸을 추스르며 갸우뚱하는 모某씨는 김 여사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런데, 답이 정말 가관이다.
“지금 시장에서 응모권 추첨혀. 1등이 무려 50만 원이여. 얼른 가자.”
김 여사는 명절 내 상설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받은 응모권을 서른 장가량 내보였다. 모某씨는 기가 막혔다. 50만 원이 자기 전대(纏帶)에서 나온 돈인 것 마냥 태연하게 “받으러 가자!”고 말하는 김 여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일체의 저항을 포기한 모某씨가 눈 비비며 옷을 챙겨 입는 사이에 내뱉는 결정적인 말.
“50만 원 받으면 너 다 가져라.”
행사장에는 수백 명의 아주머니가 모여 있었다. 트럭 위 간이무대에서는 울대가 제법 튼튼해 뵈는 아주머니들이 근본 없는 고유 안무를 선보이며 노래자랑 중이었다. (초대 가수는 없었다) 그 옆에 붙여 둔 전지(全紙) 위에는 조악하게 “1등 50만 원 1명, 2등 30만 원 1명, 3등 자전거 20명, 4등 휴대용 가스레인지 20명”이라고 쓰여 있었다. 모某씨는 입구에서 나눠준 사은품, 12개들이 두루마리 화장지 ‘뽀삐’를 깔고 앉아 아줌마들의 노래에 손뼉을 치면서 꾸뻑꾸뻑 졸았다. 그리고 당첨자가 다음 당첨자를 추첨하는 시간. 중복 당첨 불가 원칙에 따라, 응모권을 김 여사 10장, 모 사장 10장, 모某씨 10장씩을 각자 나눠 쥐고 함께 꿈을 키웠다. 두구두구, 두구두구(효과 음향은 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지만 죄다 꽝! 이날 응모권 수는 4천여 장에 달했으며, 당첨자 중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8할에 육박했다.
모某씨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털래털래 집으로 돌아가 다시 잠에 빠졌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모某씨는, 오늘 눈앞에서 벌어진 아주머니들의 섹시(?) 안무와 지루한 행사와 응모권 추첨(두구두구)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금새 50만 원이라는 농담 같지 않은 금액을 떠올리고 맥없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