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가 뛰어 들어왔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지루한 평화는 그녀의 젤리 슈즈에 의해 손 써볼 틈 없이 무참하게 짓밟혔다(김 여사 연작으로도 손색이 없구나).
“어이고? 다른 집은 콩은 벌써 다 튀었댜! 우리도 얼른 콩 털러 가야것어.”
그래. 또다시 모某씨는 노역(勞役)의 의무를 짊어지고 콩 베러 길을 떠나야 했다. 왜, 생업도 아닌 농사일을 드넓게 벌여놨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르신들의 취미란 수확이 동기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수십 년간 지은 자식 농사는 보다시피 다 망쳐버렸으니 모某씨는 이 모든 걸 ‘노역(勞役)’이 아닌 ‘노역(奴役)’이라 받아들였다. 하여간 모某씨는 순순히, 이 신성한 1차 산업 발전을 위해서 김 여사와 모 사장님께서 매입한 쌍용 코란도 트렁크에 빨래 몽둥이 하나, 호미 둘, 수확물을 담아둘 부대, 참으로 먹을 양념 닭발과 우리 술 한 병을 싣고 ‘찬찬히’ 밭으로 이동했다. 시속 50Km쯤?
읍내에서 1Km 떨어진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여름에 뿌려둔 유기농 비료의 뛰어난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콩이 벌어지기는커녕 제대로 열지도 않았더라. 시퍼런 콩깍지와 이파리를 보면서 (몰래) 환호성을 지른 모某씨는 밭둑에 앉아 ‘때꼴(까마중)’을 따 먹었다. 긴 가뭄으로 맛이 맹했다. 그때 “노는 아들놈이 뵈면, 조상님의 명당 묘라도 옮겨 쓴다.”는 가훈(아님)에 따라, 모 사장님께서는 “감나무라도 털어라!”하고 명령했다. 모某씨는 쪼르르 달려가 최선을 다해 감을 털었다. 하지만 성에 찰 리 없는 모 사장님은 직접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후둑후둑. 신경질적으로 떨어지는 감에 머리통을 맞을세라 아들놈이 날쌔게 피해 달아나는 동안, 모 사장님이 땡감과 같은 속도로 나무에서 떨어졌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사의 사탑 실험이 바로 이런 거였지. 모 사장님은 다행히 크게 안 다쳤지만 마침 그곳에 있던 벽돌에 부딪히며 정강이가 까졌다. 아파 보였다. 그 와중에도 상처에 내려앉은 딱지를 조근조근 뜯는 상상을 은밀히 머릿속에 펼친 모某씨는 역시 망나니다.
이날 새벽, 모 사장님은 끙끙 앓았다. 모某씨가 빨간약과 후시딘 연고를 꼼꼼히 발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 “모 사장님, 후시딘을 꾸준히 바르시면 딱정이가 안 생깁니다. 아, 마데카솔이었나?”
명절은 참 길었다. 강렬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을 땄고(샛노란 열매가 머리 위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모습을 상상하자·상상하자), 찜질방에 두 번 갔고, 자동차 극장에 한 번(영화 《가문의 부활》이 유일한 선택지였다니), 게임방에 네 번(스타크래프트·스페셜포스·사천성·테트리스), 남장리 큰집과 ㅂㅂㅅ씨 댁과 ㅈㄷㅇ씨의 할머니 댁과 대천 어항에 다녀왔다. 그리고 조양 실내포장마차의 양념 닭발을 네 봉지, 치킨 세 마리를 먹었다. 주요 식단은 꽃게 찌개, 꽃게찜, 간장게장, 주꾸미 샤브샤브, 소갈비, 소고깃국, 돼지 뼈다귓국, 갈치, 초대형 소라, 눈알고동 등이었다. 바쁜 일정으로 말미암아 ‘삽다리 곱창’의 돼지 곱창구이와 이번에 개업한 초밥집의 회전초밥을 먹지 못한 것은 조금 안타깝다. 송편에는 손대지 않았다. 명절에 관한 이야기가 좀 더 남아있지만, 솔직히 쓰기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그만해야겠다. 게다가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넘길 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일기 쓰기가 매끈하지 않다. 어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은 늘 이것뿐이다. 긴장이 없는 일상. 비록 이것이 날 망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