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열흘 전, 벨기에에 있는 구글 데이터 센터가 벼락을 맞았다. 그것도 무려 네 번. 그래서 스토리지 시스템에 전력 공급이 잠시 끊겼고 복구할 수 없는 데이터 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손실된 데이터의 양은 전체 저장 용량의 0.000001%, 즉 1억 분의 1이란다. 놀랍다. 벼락이 네 번씩이나 전기 시스템을 내리갈긴 것도 놀랍지만 데이터의 99.999999%가 보존되었다는 건 더 놀랍다.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귀찮고 번잡스럽다. 주변에 널린 물건들을 필요와 불필요로 분류하고, 필요한 것들을 상시적인 필요와 일시적인 필요로 다시 구분하고 골라내어 작은 가방에 가능한 한 많이 욱여넣는 일은 피곤하다. 길 위에서는 더 괴롭다.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들과 낯설지만 익숙한 인상이 창밖으로 이어지면 나는 반드시 시름 한다. 두고 온 건 대부분은 나쁘지만, 모든 여행자는 결국 돌아가야 한다. 기쁘거나 즐거울 땐 또 그것대로 아프다. 내 행복을 가장 바라는 그분들은 이제 노쇠하다. 나는 좋은 걸 보면 그 풍경을 떼어내어 그분들의 잠든 머리맡에 가져다 두고 싶어진다. 못 박힌 바닥에서 뒹굴다 온 표정으로 잠 깼을 때, 다 잊고 한동안 들여다볼 만한 풍경을.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구글 데이터 센터는 꼭 가보고 싶다.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보다 그들이 수집한 데이터가 나는 훨씬 더 경이롭다. 그 안에는 우리의 대부분이 담겨 있거나 담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짐작할 수 없는 모습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비록 표정이나 억양은 내가 가진 걸로 적당히 메꿔야 하겠지만. 본인이 까맣게 잊어버린 소소한 일상이나 하찮은 댓글도 데이터 센터는 기억한다. 그 엄청난 양의 데이터는 어떤 실록보다 더 역사적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는 나의 부모님은 매우 적고 제한적인 데이터를 남겨주시겠지. “이처럼 이웃과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와 같은 한 줄짜리 인터뷰와 굳은 표정의 사진 같은 걸 얼마쯤. 그러다가 훗날, 내 머릿속이 흐려지고 주변 사람들 모두 저 너머로 가버리면 부모님은 안개 속에 갇힐 것이다. 무섭게도 벌써 그 조짐이 보인다. 몇 번 들은 것도 같은데 어머니의 태몽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청년 시절 꿈은 뭐였더라. 이 모든 게 그냥 없었던 것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내일 전화해서 여쭤봐야겠다. 그리고 다시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야겠다.

그나저나 영원히 유실된 1억 분의 1의 데이터는 정말 유감이다. 항상 백업하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파편, 2019년 07월

20190707 (일) 조카2호가 서울에 왔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캐리어를 끌고. 방학의 기쁨이 너무 짧다. 20190713 (토) 해수욕장의…

장미와 햇밤

홍장미가 청양 할아버지 댁에서 직접 털고 주운 햇밤을 건네주고 갔다. 종이봉투에 아주 정결하게 담긴 몇 줌의 햇밤이었다. 귀한…

너는 신림동, 나는 흑석동!

신림동 인구가 두 명 늘었다.  조카 1호가 먼저 이사를 왔고 조카 2호도 오월에 온다.  이사 당일에 처음 가…

요조 보러 갈 남자

20151123 (월) MS SurFace Pro 4 Core m3 결제 페이지를 열어두고 아홉 시간째 괴로워하고 있다. 결제를 끝내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