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알아내지 못할 것 같다. 무언가의 누출 현상이 충분히 요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목격자 없는 뺑소니 사고의 피해자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지금 주변은 아주 캄캄하다. 괴괴하다. 이 와중에 정신마저 놓아버리면 생각이 다시금 착상(着床) 하기 전에 여러 가지 불행이 먼저 달려들어 크고 작은 상처를 내고 가버릴 것이다. 그건 막아야 한다. 나는 곁에 떨어져 있던 어려운 책에 손을 뻗고 집어 든다. 누구나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정독한 사람은 저자가 유일한, 그런 종류의 책이다. 나도 몸 안의 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읽어 내려갔지만 단 한 문장만 간신히 건져낼 수 있었다.
“인과관계의 문제는 복잡하다.”
나는 여기에 왜 누워 있을까. 내 몸속 무언가는 왜 빠져나간 것일까. 여기서 “인과관계의 문제”가 정확히 어떤 것을 지시하는지 모르겠지만, ‘인과관계 자체’에서 복잡성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임을 복잡하게 나누어 짊어져 준다면 되려 감사할 일이다. 현실은 서사 속과 달리 인과를 고정할 수도 고정할 필요도 없다.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는다. 우려와 달리 불행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불안이, 불행의 도착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불안이 달그림자처럼 곁에 드리워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난 눈을 감고 조용히 가만히 듣고 있다.
나는 이런 소리를 내는구나.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소리. 마른침을 몰래 삼키는 소리. 생명이 엄숙하게 타들어 가는 소리. 방향을 바꿔 멀어지는 불안에 내쉬는 긴 숨소리. 잠이 밀려온다. 그 순간 달려든 불행이 잠을 밀어낸다. 인과관계의 문제는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