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지고 실금이 뿌리 내린 머그컵에 설록차를 담아 후우 후후 불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다. 아이의 콧방울처럼 탄탄한 피아노 선율이 허공을 요란하게 돌아다니다가 책상 위 이불 위 설록차 위로 내려앉는다. 소리는 흡사 초음파 가습기의 포말 같다. 온 구석에 흩뿌려졌으나 순식간에 투명히 사라진다. 전신으로 밀려드는 소리를 만지고 맡고 맛보다가 나는 살짝 눈을 감는다. 어떤 생각을 해볼까. 꼬마전구로 촘촘히 치장한 순록과 썰매를 암흑 속에 그린다. 나는 용산역을 지날 때 마다 순록 설치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작년에는 건물 외벽을 기어 오르는 산타클로스가 있었다.
조금 어리숙해 보였던 산타클로스는 어디로 갔을까. 나에게로 썰매를 몰아오는 중은 아닐 거다. 만약 찾아오더라도 그는 잔뜩 실망한 채 돌아갈게 뻔하다. 잠들기 전에 자일리톨을 씹는다는 핀란드의 요정들이 선물로 20인치 LCD 모니터나 플레이 스테이션3를 준비하려면 다국적기업의 특허권을 침해하거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 껌을 넣고 용산전자상가 지하도로 내려가야 할 테니까. 게다가 나는 속물적인 상상밖에 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됐으므로.
그래서(?) 산타클로스와 요정의 도움 없이 스스로 스피커를 바꿨다. 이전에 사용하던 ‘알텍랜싱(ALTEC Lansing) VS-4121(보기)’의 흉을 보자면, ① 고음과 저음의 불균형 ② 주변 전자기장의 영향을 크게 받음 ③ 묵음 임에도 잦은 우퍼 노이즈 등을 들 수 있다. 대학시절 사용했던 알텍랜싱의 다른 제품에서도 ②·③번의 증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다보니… 다시는 알텍랜싱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 같다.
요 앞에서 “아이의 콧방울처럼 탄탄한” 소리를 들려준 스피커는 ‘Creative I-TRIGUE 3400(보기)’이다. 위에서 지적한 ①·②·③번의 문제들이 깔끔하게 해소됐다. 비록 고음의 해상력이 뛰어남을 벗어나서 날카롭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만족한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종일 들었더니 성령이 충만해 배도 안 고프구나(식비를 축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