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하루 전날 안성에 왔다.
오후 4시에 출발한 고속버스(동양고속)는 비 탓에 반포나들목 초입에서 15분 동안 묶여 있었다. 그래도 도착 예정 시간은 크게 비껴가지 않았다.
비에 젖은 주말 오후의 캠퍼스는 적적했다. 짐은 무거웠고 우산은 거추장스러웠다. 방을 예약해둔 <e-모텔>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지도를 여러 번 확인해야 했다. 외국어문학관 부근을 지나가던 여학생은 내 행색을 보고 뛰어서 달아났다. 아주 멀리. 누군가에게 안성캠퍼스는 적적하기보다 무서운 곳인 모양이었다.
<e-모텔>은 실망스러웠다. 아주 평범한 모텔이었는데, 실망감이 큰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기대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4층 카운터의 쪽창 틈으로 본 주인아저씨의 뱃살이 인상적이었다. 모텔 주인이 될 수 있다면 저렇게 엉덩이를 배에 얹고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붉은 소파에 짐을 놓고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오는 길에 본 <병천순대>의 순대국밥과 <헐떡고개>의 뼈다귀해장국이 얼른 떠올랐다. 나는 둘 다 포기하지 못하고 저녁으로 뼈다귀해장국을, 아침으로 병천순대 순대국밥을 먹기로 정했다. <헐떡고개>의 뼈다귀해장국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싱싱한 파 채를 얹어주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밥을 먹고 대학 주변 상가를 둘러보다가 만화방을 발견했다. <위드 만화방>(시간당 2천 원). 한때 챙겨보던 <겁쟁이 페달>, <우주 형제>, <산>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정말이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결국 <산>을 집어 들었는데 몇 권까지 본 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1권부터 보기 시작했다. 모두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두 시간 동안 네 권 밖에 읽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5권, 다음번에는 5권부터. 잊지 않기 위해서 몇 번을 중얼거렸다.
모텔에 돌아와 JTBC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봤다(301번 PLAYBOY 채널은 호기심에 아주 잠깐 봤습니다). 주제는 ‘부탁’이었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했다. 한양대학교 한재권 교수는 어느 학생의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배즙과 그걸 돌려드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김영란법 시행 첫날에 도착한 택배!)을 이야기했다. 우연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 그 배즙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 동기 윤과 그 아들이다. 아는 사람의 아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니 마냥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