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10903 (토)

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우리가 딛고 올라선 어둠은 층계가 될 거야.


20110904 (일)

옥수수가 좋아. 너랑 반으로 갈라 먹는 찐 옥수수가 좋아. 너와 나, 서로 큰 쪽 사양하며 다툴 수도 있는 노란 옥수수가 좋아.


20110905 (월)

경험은 윤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2010.


20110907 (수)

사람과 사람이 웃음을 터뜨리며 지나간다. 카페에선 아르바이트생이 웃음을 터뜨리며 주문을 받고 있다. 5511번 버스의 기사님도 웃음을 터뜨리며 뒷문을 닫고 다음 정류장을 향해갔다. 나도 웃음 터뜨리며 길어지는 그림자를 간지럼 태운다. 하하호호한 가을.


20110907 (수)

나의 과실은 몸을 취한 것이다. 서서히 찌그러지는 몸 안에서 몰래 훔쳐보는 이 예쁜 가을밤.


20110908 (목)

오니기리 다이어트로 26㎏ 폭풍감량한 여대생 기사가 모든 언론사에 올라오네. ‘오니기리와이규동’에서 폭풍 보도자료를 뿌렸겠지? 지난달 말엔 「오니기리와이규동 삼각김밥 ‘다이어트식’으로도 인기」라는 기사를 뿌려대더니…. 나도 어제 여기서 점심 먹었어요.


20110909 (금)

열차가 출발하기 십오 분 전, 서점에 달려가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를 샀다. 나는 옮겨지고 있다.


20110910 (토)

등이 배겨 자꾸 잠 깬다. 내 몸이 이토록 투박하고 무거워지도록 방치하며 살아온 죄를 참회한다. 야채호떡이 먹고 싶다.


20110910 (토)

휴 로리(Hugh Laurie)의 앨범 《Let Them Talk》를 구해야겠다. 와, 신난다. http://goo.gl/bfv0I


20110910 (토)

낮잠을 때리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외삼촌? “단체문자를 보내려는데 명절인사 문구 좀 멋있게 지어봐라.” “네? 인터넷에 많아요.” “흔한 거 보내려면 왜 전화를 하냐. 기다릴테니 바로 문자 보내라.” “네?” …이러려고 배운 글이 아닐 텐데.


20110910 (토)

조카 방에서 ‘권지용’ 명찰을 발견했다. 명찰을 왼쪽 가슴에 달고 조카1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 지드래곤이야. 넌 이름이 뭐니?” “수지요.” “네 이름은 수지가 아닌데!”


20110911 (일)

홍주성에 발도장 쿡! 너는 가버렸고 그곳도 사라졌다.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그 시절이 통째로 가물가물하다. 나만 나를 기억한다. 더 잃어버릴 것이 없어서 고향은 마음이 편하다. @imintwt


20110912 (월)

로또명당에 발도장 쿡! 로또복권 일등 당첨이 또 미뤄졌다. @imintwt


20110912 (월)

홍성온천에 발도장 쿡!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목욕탕.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imintwt


20110912 (월)

나의 권지용 개드립에 감복한 ‘수지 닮은 조카1호’가 편지를 보내왔다.


20110913 (화)

나는 너의 활주로. 내 빛나는 혈관의 유도에 따라 안전하게 착륙한 뒤 굶주린 배를 가득 채워 가을도 겨울도 어디 한번 건너봐라. 모기야.


20110913 (화)

조카1호와 ‘가짜 삼촌을 찾아라!’ 놀이를 했다. ‘삼촌’이 아닌 것은 모두 다섯 개. 전부 찾았더니 조카1호가 수고했다며 주물러 콜라맛을 사줬다. 참 맛있었다.


20110913 (화)

약국 앞에서 건들거리던 남고생들의 대화. “개구리 냄새나지 않냐?” “아니?” “이건 쓰레기 냄새잖아.” “생선 비린낸가?” “개구리 냄새 같은데….” “아니래도!” 개구리 냄새를 모르는 사람은 나뿐인가요?


20110914 (수)

홍성온천에 발도장 쿡! 시간이 달구지 타고 간다. KBS1 《아침마당》에선 노래 <여고졸업반>을 흘려보내고 있다. 한 아저씨는 안마의자에 무임승좌해 가을볕 쬐며 존다. @imintwt


20110914 (수)

윤이비인후과에 발도장 쿡! 어머니께서 “제2진료실에 명의가 있다!” 하시었다. 진실로 허명이 아닌지 지금 대기자만 마흔하나가 있다. 나도 코로 숨 쉬고 살아보자. @imintwt


20110914 (수)

유튜브에서 ‘스네이크 게임’하는 방법: ① 버퍼링 상태임을 보여주는 빙글빙글 동그라미를 클릭 ② (위) 또는 (아래) 방향키. 전체화면 모드는 센스! 재생 중에도 가능. 게임전용 영상도 있어요. http://youtu.be/0RzTXFF0OYE


20110917 (토)

전세버스가 출발하기 전, 혼주인 외삼촌께 손아래 종친이 여쭈었다. “다 챙기셨어요?” 이리저리 인사 나누던 외삼촌께선 “아이고, 딸을 놓고 왔네!”라고 너스레 떨며 웃으셨다.


20110918 (일)

내가 먼저 웃고 당신이 웃기를 기다려야겠다.


20110920 (월)

바람이 엉키고 신발끈이 풀어졌다. 여전히 서먹서먹한, 생활.


20110921 (화)

능선으로 몰려든 검은 구름이 / 귀밑머리처럼 삐죽삐죽 나온 지붕에 한발을 걸친다 / 그 사이, 좁다란 골목길이 계단을 오르며 헉헉 숨 내쉬는 곳에 / 할아범 측백나무와 오페라 미용실이 마주 서 있다 ― 윤석정,「오페라 미용실」부분.


20110921 (화)

노트북 어댑터 케이블을 두고 왔다. 배터리도 감량을 위해 두고 왔다. 섭식이 어려울 때 지방이 없으면 곤란하겠구나. 당장 빅맥을 먹어두자.


20110923 (일)

너무 위태로워서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다.


20110927 (목)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20110928 (금)

“그냥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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