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폐허가 된다. 내 명의로 전세권이 설정된 이 주택도 포클레인의 광포함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집들이 폐건축자재로 돌변했다. 이 몰락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가(一家)가 궁박(窮迫)한 짐을 꾸려 이 도시를 등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계절 동안 보았고 들었다. 내가 사는 언덕의 산등성이에 주춧돌을 세웠던 집들은 며칠간 먼지에 휩싸이곤 모두 바스러졌다. 어느덧, 이 도시는 누군가가 타지로 나서기 위한 경로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흑석동은 거대한 플랫폼이며 선착장이다.
나 또한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 두 해를 보내는 동안 살림이 적잖이 늘어났다. 멍청함을 은닉하기 위해서 게걸스럽게 쓸모없는 책을 사들였고, 자그마한 책장을 주워 몇 뉘어 놓았으며, 누이에게 미니 컴포넌트를 얻어 방에 들였고, 가정용 와플 기계와 붕어빵틀도 장만했다. 그리고 몸무게가 4킬로그램쯤 늘었다. 이젠 1톤 트럭에 이 모든 것을 싣지 못할 것이다. 별수 없이 수백 가구의 다른 이들처럼 몇몇 짐을 집 안에 남겨 놓고 떠나야 할지 모른다. 가령 『창작과 비평』 영인본과 1천8백 센티미터짜리 월넛 책상 같은 것들을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간하는 이들은 나의 부끄러운 도서 목록이나 낡은 집기 따위는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떠난 뒤, 이곳엔 새로운 도시가 들어선다. 분명 웅장한 도시가 들어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러르는 도시가 탄생할 것이다. 교회 종탑이 점점 높아지는 부흥의 도시가 세워질 것이다. 헌금을 낼 수 없는 이들은, 이 도시… 흑석동 뉴타운 정주를 지속할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1/5000 서울시 축도(縮圖)의 아무 데나 찍어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재활용 의류 수거함을 꼬챙이로 쑤셔 뒤지던 할머니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벽과 지붕이 대강 엮어진 집 비슷한 곳에라도 붙박일 수 있다면, 그녀는 다시 태어난 도시에서 매일같이 횡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지척에라도 구부정한 등을 펴 누울 수만 있다면. 하지만 뉴타운의 이념은 그녀를 용납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멸종할 것이다. 공간의 소멸은 기억의 소멸이다. 이달 중순, 귀가하던 중 골목에서 어느 할머니를 봤다. 그녀는 어떤 청년을 잡아 세워 자기 집의 위치를 물었다. 나는 보폭을 줄여 종합적인 불편이 전신으로 드러나는 할머니의 반경으로 들어갔다. 청년에게 한 하소연은 간단했다. 할머니는 며칠 동안 운신을 못 하다가 겨우 일어나 약을 샀지만, 도통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할머니의 굽은 등에 맞춰 각을 조절한 채 눈을 맞추고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여러 사정이 궁금했지만 추위를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흥미로 타자를 들여다보는 짓은 나 자신의 도덕적 원리에 입각했을 때, 그냥 나쁜 놈도 아닌 몹시 나쁜 놈이다. 대신 그 할머니는 나의 정서에 어떤 자국을 남겼다. 하나의 공간이 낯설어지는 사건은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일어나지만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최소한 할머니에게) 이 사건은 소멸 혹은 죽음과 분리되지 않거나 또는 매우 밀접할 것이다. 한 공간의 소멸/죽음은 ‘일련의 정서’가 소멸하고 죽는 일이다. 더 나아가 ‘공간의 정서’가 소멸/죽음에 이른다는 건 주체의 어떤 부분이 용도 폐기되는 것이다. 이런 억지스러운 이유로 나는 흑석동의 소멸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공간의 정서’가 매여 있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나비가 홀연히 날아가 버린 빈 고치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올해 크리스마스 날 겪은 사소한 사건을 이곳에 남긴다. 이 기억의 정서는 시간에 의해 많은 부분 기화될 것이고, 흑석동의 소멸과 함께 냉랭해질 게다.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나는 바삐 걸어가다가 자매로 보이는 초라한 행색의 두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살짝 건드렸다. 그때 작은 여자아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러졌나 봐봐.” 그러자 큰 여자아이가 말했다. “이게 막대기냐? 부러지게?” 작은 여자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다. 주변은 이미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일 리 없었다. 큰 여자아이는 핀잔하듯 “걱정 마. 케이크는 부러지는 게 아냐.”라고 말했다. 작은 여자아이는 그제야 안심한 듯 큰 여자아이의 팔을 잡은 채 좁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 아이들을 통해 흑석동의 정서를 막연하게나마 대면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이 좁은 길로 부강한 나라에서 만들어진 견고한 자동차가 정상으로부터 끌어 당겨지듯 오르는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날이 오면 이 글은 이국(異國)만큼이나 낯선 흑석동의 정서를 적은 기록물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