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Kings of Convenience, I Don’t Know What I Can Save You From


당신은 어떤 공간의 A 지점에서부터 무한히 이동한다. 그 이동은 마찰 계수 0에 수렴하며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시간을 잠시 세우고 다른 사람이 알아챌 수 없이 공간에 균열을 내 고요하게 몸을 밀어 넣는 동시에 다시 매끄럽게 메우는 당신의 이동 방법만으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동 방법에 대한 교육은 18세기 이전의 폐쇄적인 기숙학교에서나 전승되었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말하건대, 나는 당신과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싶다. 당신이 걱정할 만큼 무례한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미리 일러둬야 할 점은, 당신이 목적지를 조금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특정 공간과 사람은 기념할 만한 사건이나 추억을 하나씩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당신이 목적지를 미처 못 정한 채 외출했을 때 나를 재빨리 지나치지 말고 ‘내가 대책 없이 삼켜버린 시간들 및 부가물(附加物)’ 주변을 느긋하게 산책해 줬으면 좋겠다. 온갖 병원균의 서식지처럼 보이는 나의 오래된 균열도 당신이 지나간 후에는 감쪽같이 아물겠지. 그럼 나도 터무니없이 평범한 감동의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터무니없이 평범한 불감의 인간이 아니라.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역류성 유년

너야말로 내 유년이었다. 골목에서 맞닥뜨리고 확실히 알게 됐다. 나란히 같은 발 디딜 때마다 잊고 지낸 기분이 시간을 넘어왔다.

파편, 2014년 03월

20140308 (토) 조금 보수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모든 문장을 새로 쓰고 있다. 불과 두 해 전에 쓴 소설인데도 도저히…

안성은 적적하고 무서운 곳

강의 하루 전날 안성에 왔다. 오후 4시에 출발한 고속버스(동양고속)는 비 탓에 반포나들목 초입에서 15분 동안 묶여 있었다. 그래도…

나도 선생이라고…

졸업식만 남겨둔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모여 있다던 흑석동 원불교기념관 1층 뚜스뚜스(브런치카페)는 대놓고 뚜레쥬르 간판을 베낀 것 같았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