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3 (화)
내 몸이 성가시다. 어디 두고 올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썩 좋아 보이는 장소마다 어떤 몸이 뉘어져 있다.
20100807 (토)
쓰다만 엽서를 발견했다. “이젠 봄보다 당신이 더 절박하다.”로 시작하는 알레르기성 엽서였다. 중간쯤에는 “당신은 너무 딱딱하다.”고 쓰여 있었다. 이젠 당신에게 왜 ‘딱딱하다’는 수사가 잘 어울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밉다.
20100807 (토)
오규원은 시 「밤과 별」에서 “밤이 세계를 지우고 있다 / 지워진 세계에서 길도 나무도 새도 / 밤의 몸보다 더 어두워야 자신을 / 드러낼 수 있다”라고 적었다. 그렇지. 우린 단 한 번도 빛을 지녔던 적이 없으니, 더 어두워지는 수밖에.
20100808 (일)
“나무라도, 돌이라도 굳은 것을 안고 엉엉 울거나 막 취해 웃고 싶은 느낌! /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데서 나오는 허망.” 아, 전혜린. 나는 이제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다. 이런 불행을 더는 반복하지 않기만 바란다.
20100808 (일)
종로5가 고시원에서 스무날쯤 산 적이 있다. 한겨울. 창 있는 방. 나는 네온사인에 맞춰 깜빡깜빡 담뱃불을 켜고 껐다. 그곳은 시작이었다. 조금 전, 전세금으로 고시원에서 몇 해를 날 수 있는지 계산해봤다. 그곳은 끝일 것이다. 고마운 사람이 많다.
20100809 (월)
낮잠으로 가면 우리집이 있다 부들버들 부들버들 흔들리던 녹색 조각 빛 길 건너 버드나무를 보고 있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강물소리 내며 흐르는 바람이 씻어낸 그 빛 식어 내 몸에 앉을 때마다 졸음이 쏟아졌다 그때로 나 깃들 수 있다면 미래도 씻어낼 것이다.
20100815 (일)
어서 나가라. 나의 비좁은 사막에서, 네가, 멸렬한 나를 중심으로 혹은 끝없는 불행을 중심으로 인내의 탑돌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얼마나 다행이냐. 너는 스스로 들어온 적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