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한 오이를 먹으면 속이 시원해 질 듯싶구나.”
“새콤한 파인애플을 먹으면 울렁증이 진정되지 않을까?”
“아까 할머니가 나눠준 하우스 귤이 참 달고 맛있더라.”
“엊저녁 간호사가 칼슘 약을 주면서 바나나 같은 걸 먹는 게 좋다던데….”
나는 어머니의 식욕이 돌 만한 음식을 찾아, 물어물어 육교를 건너고 사거리를 지나 <가락 공판장>을 찾았다. 마침 ‘가사의 달인’처럼 보이는 여사님께서 백 오이와 청 오이의 차이점을 물어가며 식료품을 양껏 사고 계셨다. 그 어떤 약속보다도 믿음직했다. 나도 이것저것 신중히 골라잡아 결제하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이때 갑자기 줄기 굵은 비가 쏟아졌다. 내 앞을 지나가는 어느 택시도 빈 채로 달리지 않았다. 간신히 세운 택시는 내 목적지를 듣고 완곡하게 승차를 거부했다.
“길 건너에서 타세요. 여긴 마땅히 차를 돌릴 곳이 없습니다.”
상가 처마 아래에서 나와 함께 비를 피하던 인상 좋은 아저씨는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이 블록을 끼고 돌면 곧바로 목적지에 닿는다는 것이었다. 여튼, 망했다. 나는 <햇반> 세 개와 <비빔참치 매콤한 맛> 세 개만 남기고 나머지 식료품을 다 버린 뒤에 어머니가 누워계신 삼성서울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어머니, 입맛이 너무 없다던 당신의 식욕은 오늘 너무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