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짐승이라도 찾아와 주었으면….
바람만 몸집을 불리는 흑석동 고지대에서 나는 온기 품은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 염치를 알고 난 이후로는 나보다 체온이 높은 것에 차마 길을 내지 않았다. 한겨울 응달진 골짜기에 선 사람의 입안에 단단한 고드름을 욱여넣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열전도 윤리다. 하지만, 바람의 굉음을 가만히 들으며 웅크리고 있는 겨울밤엔 산짐승의 노크라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심심찮게, 손전등 빛을 성에 낀 창에 탈칵탈칵 쏘아대며 무료함을 견디는 것이다. 천 원에 일곱 개짜리 조생귤엔 어느새 갈색 빛깔이 물들었다.
똑똑.
누구세요?
나는 <녹차 먹은 타이즈>만 걸친 채 문을 빼꼼 열었다. 한 무리의 냉기가 들어왔다. 산짐승은 문 앞에 서서 흙발을 구르다가 나와 타이즈와 흙발을 번갈아 살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휘휘 젓고 반으로 잘라둔 수건에 물을 적셔서 건넸다. 산짐승은 꼼꼼하게 발을 닦으며 안을 흘끔흘끔 살폈다. 아차. 나는 산짐승이 보기 전에 <돼지족발·보쌈집> 쿠폰을 얼른 감췄다.
마땅히 대접할 만한 음식이 없었다. 나는 갈색 빛깔 조생귤과 유통기한이 임박한 요구르트를 내왔다. 벽에 기대앉은 산짐승은 “오늘처럼 들뜬 밤엔 고구마 빛깔의 귤이 훨씬 잘 어울린다”며 기쁜 비명을 꾸웩 지르고 네 발을 버둥거렸다. 나는 예기치 못한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 에둘러 겸양을 떨고 싶었지만 말 대신 귤의 젖줄에 코를 박고 거세게 빨아댔다. 그러자 산짐승은 한결 편안하게 등을 벽에 기댔다. 그리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맞은편 창문을 향했다. 눈송이는 여전히 거리를 날고 있겠지만 창문엔 어둠만 맺혀있었다.
우리는 갈색 귤에 코를 박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서도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길게 이어졌다. 가령 내가 “가슴이 큰 여자가 좋아.”라고 말하면 산짐승이 “나도 산짐승치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겠지? 젖이 많기도 하고.”라거나, 산짐승이 “나는 뿔이 있는 수컷을 보면 참을 수 없이 흥분돼. 특히 일각수가 제일이야. 아, 뿔은 초식동물에게만 있다는 거 알지?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전쟁을 지향한다면 초식동물의 뿔은 평화 그 자체인 거야. 오랫동안 평화를 지킨 초식동물들은 커다란 뿔을 머리 위에 상찬처럼 얹고 있지.”라고 말하면 나는 파티용 종이 고깔을 꺼내 쓰며 “그래? 우린 생일이나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엔 맘에 드는 이성을 초대해서 고깔을 써. 그러면 그날만은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섹스를 하는 것 같아.”라고 덧붙이는 것이다.
자정. 성탄전야가 지나고 성탄일이 되자마자, 우린 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온갖 짐승이 나오는 옴니버스 영화를 봤다. 고깔을 머리에 얹은 내가 멍청하지만 평화로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산짐승은 소유욕이 강한 아기돼지나 찬물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하마의 시시콜콜한 대사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했다.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털이 모두 깎인 채 버려진 작은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나는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니다. 나는 고양이의 정체성이 벗겨진 채 버려졌다. 이제 난 뭐지!”라고 탄식을 하고 있을 때, 커다란 쥐가 다가와서 “전에 어디서 뵌 적이 있지 않나요? 아, 혹시 삼거리 신축건물?”이라고 묻는 장면이다. 나는 감독이 털이라는 외피의 손상을 통해서 주체성뿐만 아니라 개체성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 작은 고양이는 큰 쥐의 뒤를 따라 음식점 <a rattrap>에 들어간다. 그리고 줌아웃으로 <a rattrap>의 간판이 산짐승의 발톱만 해졌을 즈음, 근처에서 고양이의 털이 담긴 쓰레기봉투가 어느 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터진 틈으로 빠져나온 털이 눈처럼 쏟아져 날릴 때, 나는 산짐승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밤에 자고 가지 않을래?”
산짐승은 오랫동안 내 뿔을 바라봤다. 영화 크래딧이 모두 올라간 뒤에 어떤 포유류 감독이 나와서 “종간의 화합을 이루기가 가장 어려웠다. 우린 ‘리틀 톰’(웃음)의 입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매초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 ‘빅 제리’ 본 사람 있어?”라는 제작 후기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산짐승은 내 뿔을 바라봤다. 그리고 산짐승은 내 ‘첫 번째 뿔’을 발로 (애교 있게) 걷어차면서 수락했다. 나는 아픈 고환을 부여잡고 신음하면서 영화 데이트에서 작품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산짐승을 안고 침대로 들어갔다. 벽 쪽에 산짐승을 눕혔다. 산짐승은 고개와 네 발을 모두 내 쪽으로 두고 새카만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몸을 곱게 펴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산짐승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네발짐승이 된 것처럼 팔과 다리를 쭉 뻗었다.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산짐승의 얼굴과 어깨와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산짐승은 코로 바람을 씩씩 내뿜으며 일어나 네 발로 섰다. 그리고 나를 자신의 등 위에 태웠다. 나는 매끈한 등에 몸을 얹은 채 손으로 여러 개의 젖을 번갈아 만졌다. 내 음낭만큼이나 아주 보드라운 젖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네발짐승처럼 사랑을 했다. 밤새 네발짐승처럼 사랑만 했다. 털이 없는 작은 고양이와 덩치 큰 쥐가 식사 메뉴로 다투는 와중에도 우리는 사랑을 했다. 누추한 집도 누추한 나도 잊어버리고.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