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콧물도 즐겨 빨아먹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의 뜨거움을 이해했다. 동시에 자아의 실존에 대해서 체념했다. 네가 없다면 나도 없다. 의심을 허락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이로써 나는 한 소녀에게 철저히 기댔다. 나와 나 이상의 존재가 개기일식처럼 포개져 세상을 무위(無爲) 만드는 모습은 매혹 이상의 것이었다. 감히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사랑이 분명했다. 이 고결한 소녀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던 나는 신발 앞코가 새카매질 때까지 땅을 차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길 루틴인 현대상회 뽑기마저 끊었다. 즐겁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네가 나에게 해주었듯이, 어떻게 하면 나도 네 실존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보다 소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호명(呼名)에는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무시의 선택지를 제외하는 (폭력적이 아닌) 힘. 그게 나와 너 사이에 작용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네모난 종이에 이름만 잔뜩 썼다. 그 종이로 학과 알을 접었다. 종이학의 주둥이와 날개가, 학알의 모든 면이 어긋나지 않도록 접으면 무결한 육면체의 감정이 부화하리라 여겼다. 그랬다, 그땐.

당장 먹을 콧물도 부족한 시절이다. 그 소녀는 사라지고 없는데 거울 속 빛나는 모퉁이에 언뜻언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부르지 않아도 소녀는 여전히 눈이 멀어 버릴 만큼 섬세하게 부서지는 빛을 쏟아낸다. 나는 지난날에 이어 편지를 쓰거나 서툴게 종이를 접는다. 난 앞으로 계속 서투를 사람이다. 누군가 호명할 만한 힘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를 둘러싼 이들의 따듯한 호명으로 내가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다. 조금 창피하지만 나를 눈여겨 살펴주는 이들에게 짧은 글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아직 입금 및 결제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분발하시라. 난 사랑을 먼저 건는 당신만을 지지한다.


연필깎이와 연필

외출을 바삐 준비하던 어느 오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얼굴을 들여다봤다. 거울에 서리는 김을 손으로 씻어낼수록 어째서인지 ‘지금-저기’만 선명해졌다. 그리고 ‘지금-여기’ 있는 나는 되려 가짜 같았다. 그래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 있으니 /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라고 흥얼거리면서 듬직하게 ‘지금―저기’에 버티고 서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거울 안 사람은 나를 흘끗 보고는 노래로 화답했다.

“그게 바로 너야.”

그렇구나. 너도 나로구나. 아무리 짜증 나는 책이라도 대견스럽게 밑줄치고 주석을 다는 나다. 종이가 된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기운을 내는 나였다. 비록 작지만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된 순간, 내가 대견해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소박한 것을.

나는 약속도 잊은 채 영풍문고에 들러 FABER-CASTELL 3구 연필깎이와 HB연필, 그리고 STAEDTLER Noris HB2 연필을 포장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고른 만큼 나는 연필의 절반을 그날 당장 써버릴 정도로 아주 기뻤다. 한편, 내가 죽어 거름이 되는 것으로는 다 갚지 못할 나무의 은혜에 감사했다는 후문이다.


비싸고 아름다우며 어려워 보이는 책

“당장 밖으로 나가 처음 마주치는 사람을 죽여라. 그럼 비가 그칠 것이다.”

만약 이런 신탁(神託)이 내려진다면 난 당장 부엌칼과 망치와 파이프렌치 중 하나를 집어들 것이다. ― 와 같은 생각 따위로 시간을 보내는 장마 기간이었다. 난 곧 양서류가 될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하면서 아가미호흡을 연습하던 중 약속이 덜컥 생겨버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다시 비가 쏟아질 확률이 98퍼센트였지만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일 년에 며칠 외출하는데 설마 비가 쏟아질까, 하는 이상한 오기와 믿음의 수행(隨行)이었다.

무사히 도착한 카페 <그들 자신>에는 코드네임 ‘눈빛보라서클’ ㅁ씨가 고운 자태로 까르르 웃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한껏 어지른 테이블은 ㅁ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연출처럼 보였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막 도착한 나를 확인한 ㅁ씨는 훌륭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선물이예연.”

여성주의 이론가 ‘임옥희’가 지은 『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 주디스 버틀러 읽기』(도서출판 여이연, 2006.)는 한눈에 봐도 비싸 보였다! 비싸고 아름다우며 어려워 보이는 책을 받으면서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수도 없이 조아렸다. 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간기면에 아련하고 단단하게, 마치 오래전부터 예약한 자리에 앉은 것처럼 인쇄된 책이라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다시 수줍게 ‘감사감사’를 연발하면서 당장 서문을 읽기 시작했다.

― 이 책은 몰이해 혹은 ‘못이해’를 이데올로기로 우기며 비생산적인 이야기를 찍찍 흘려대는 ‘마초(macho)’와 심층의 본질 인식은 공백으로 놔두고 남/여성의 대립 구도로 물어뜯기를 일삼는 “가짜 ‘페미니스트(feminist)’=여성숭배자” 에게 내미는 지혜로운 손길이다. 국가는 지금도 성별 권력을 생산하고 금지 담론을 기반으로 ‘수용/배제’라는 솎아내기 법·규제 집행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을 가학적으로 정체화해 온 국가·가족·젠더·섹슈얼리티의 해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질까. 진정한 애도와 유대로서 사랑을 완성해 나가자(?), 고 외치는 ㅁ양의 연애편지가 참 어려웠다.

서명(書名)에서 알 수 있듯이, ‘철학의 타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모든 토대를 조롱하고 있다. 대체 왜, 젠더의 조롱이 이성애를 넘어 친족·법·국가까지 해체시켜야 할까. 확인해 보고 싶지? 이 책은 최소한 불편하거나 해가 되거나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인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 담겨있다. 그 방법은…… 공짜로 알려줄 수가 없다. 비체를 위하여! 값 1만 5천 원. 당연히 인터넷 서점에선 더욱 저렴하다. 우리 함께 고민해 보자.


파란색 반팔 티셔츠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의복 철학을 피력하셨다.

“옷은 가리개일 뿐이다. 그런데 입은 옷보다 못한 사람이 종종 있다. 그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그런데 막상 어머니의 옷장을 열어보면 속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가르침의 각인 효과는 뛰어났다.

내가 직접 돈을 지불하고 옷을 산 횟수는 많아야 열 번쯤이고 옷 가게는 가장 불편한 곳이다. 옷이란 정말 귀찮은 것이며 지역·계절·유행·상황·상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도 갑갑하다. 옷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감탄이 나온다. 원가의 수 배가 넘는 소비자 가격으로 사람들에게 입힐 수 있다니. 과연 존경스럽다. 옷은 비쌀수록 더 귀찮아지지 않나? 외출용 반팔 티셔츠 한 장으로 여름과 맞서고 있는 내 심정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의 노고는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숭상한다.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ㅈ씨는 내게 파란색 폴햄(POLHAM) 셔츠를 사주셨다. 덕분에 외출용 반팔 티셔츠가 두 배로 늘었다. 확실히 풍족해졌지만 외출할 때마다 골라 입는 괴로움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고심 끝에 나는 ‘코디의 두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 이미 입었지만 아직 더 입을 수 있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 입을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 입는다.

이 정도면 두 장의 셔츠 정도는 빠져나갈 틈이 없다. 만약의 경우, 얇은 긴 팔 셔츠를 입어주는 당돌함도 종종 필요하겠다. 당신에게도 이런 방법을 권한다. (셔츠가 두 장이라니… 풉… 나 패션 리더잖아?)


MP3 Player

착불 택배가 왔다. 택배비로 2500원을 냈다. 물건 값은 9640원.

충청남도 서산시에 거주하는 ㅂ씨가 <블루선 ZEN BMP-100 MP3 Playe>”를 협찬해 주셨다. 사람들은 이 제품을 보고 물었다.

“일회용이에요?”

장담하는데 6회 이상 작동은 내가 보증한다. 내장 메모리가 없어서 별도로 SD 카드를 넣어야 하지만 아주 당돌한 물건이 틀림없다. 정말 단 돈 9640원으로 MP3 재생이 가능하다고? 그냥 모형이지? 라디오 아니에요? 등등의 물음을 일축하겠다. 분명히 MP3 재생이 된다. 음질도 괜찮다. 혹자는 낮은 음량에서 화이트노이즈 발생을 지적하더라. 그런 아쉬운 마음이 들 때는 이렇게 말해보자.

“이게 얼마?”

랜덤 재생 기능도 있다. 위 버튼을 꾸욱 누르고 재생하면 랜덤모드, 아래 버튼 꾸욱 누르고 재생하면 일반재생모드다. 그런데 100곡이 있더라도 1번·2번·3번 노래만 오고가며 재생된다. 이게 얼마? 우리에게 허용되는 기대는 딱 9640원어치다. 그 이상은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일이다. 가급적 밖에서 이 제품의 음질·기능·디자인을 언급하는 행동은 삼가자. 그 순간 당신은 9640원짜리야.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유사한 기능의 저렴한 제품은 고가의 제품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가 제품의 소비를 부추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도 좋은 거 갖고 싶어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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