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두통이 있다. 우측 뇌가 찡그리는 듯한 두통이다. 별거 아니다.

엊그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번갈아 전화를 걸어온다. 병원에 가기 싫은 어머니와 의사 말을 잘 듣는 아버지 사이에 내가 끼었다. 굳이 편을 들자면, 나는 병원에 가기 싫지만 의사 말만큼은 참 잘 듣는다. 딱 하나, 담배를 끊으라는 처방은 거스르고 있다. 아무도 내게 담배를 끊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곁에 머물러 달라고 말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능성의 죽음은 뜻밖에 약해 빠졌다. 별거 아니다.

어제는 소설가 플레어 박과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나는 대체로 큰 귀 역할을 맡았다. 대화 대부분을 복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줄곧 웃었음에도 기록해 둘 만한 즐거운 이야기가 없다는 점에 뒤늦게 놀라는 중이다. 어쩌면 놀랄 일도 아니다. 즐거움은 본인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나눌 만큼 넉넉하게 즐거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자명한 낮, 그리고 밤

낮 눈 뜨자마자 ‘애인을 집으로 초대한 사람처럼 부지런히 움직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애인이 없으니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구나. 비현실적이며 실현…

다 잘 지내나요?

별일 없이 웃고 사는지 궁금했다. 얼굴은 모르지만 늘 함께 흔들리던 사람들이. 그래서 몇 년 만에 피들리(Feedly) 앱을 설치했다.…

노상, 어느 도시를 세우고 무너뜨리고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당신이 말했다. 불가피하게, 아주 오랫동안. 나는 당신에게 왜 떠나야 하느냐 묻는 대신, 거긴 단 한 번도…

파편, 2012년 11월

20121103 (토) 상록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하나같이 의욕이 없어 보였다. 이런 권태를 내가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