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이 있다. 우측 뇌가 찡그리는 듯한 두통이다. 별거 아니다.
엊그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번갈아 전화를 걸어온다. 병원에 가기 싫은 어머니와 의사 말을 잘 듣는 아버지 사이에 내가 끼었다. 굳이 편을 들자면, 나는 병원에 가기 싫지만 의사 말만큼은 참 잘 듣는다. 딱 하나, 담배를 끊으라는 처방은 거스르고 있다. 아무도 내게 담배를 끊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곁에 머물러 달라고 말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능성의 죽음은 뜻밖에 약해 빠졌다. 별거 아니다.
어제는 소설가 플레어 박과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나는 대체로 큰 귀 역할을 맡았다. 대화 대부분을 복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줄곧 웃었음에도 기록해 둘 만한 즐거운 이야기가 없다는 점에 뒤늦게 놀라는 중이다. 어쩌면 놀랄 일도 아니다. 즐거움은 본인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나눌 만큼 넉넉하게 즐거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