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당신이 말했다. 불가피하게, 아주 오랫동안. 나는 당신에게 왜 떠나야 하느냐 묻는 대신, 거긴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당신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그곳으로 ‘불가피하게’ 옮겨질 것이고, 당신은 나 때문에 그곳을 ‘불가피하게’ 상상할 테니까요. 그곳의 하늘이 어떤 빛깔을 띠는지, 번화가는 어떤 모습인지,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길을 걷는지, 서울 말씨에 우호적인지, 음식점에선 어떤 찬이 항상 놓이는지…. 이런 세부까지 모두 아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곳에 한 번 들러줘요. 그전엔 절대 오지 말아요. 상상에 없는 도시를 방문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요.”
나는 긴 시간 공들여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당신의 시선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그곳의 풍경은 찬 바람에 한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