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우리는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잔디밭에 누워 보냈다. 그 사이사이 레쓰비 깡통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볕은 대체로 따가웠다. 학보를 펼쳐 얼굴에 덮으면 딱 좋을 만큼. 잔디밭에 널브러져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보 한가운데에 담배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그걸 얼굴에 얹고 입과 구멍을 잘 맞춘 뒤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끼워 불을 붙였다. 신문지의 콩기름 냄새와 활자의 잉크냄새, 필립 모리스 담배 냄새가 뒤섞이면 심장이 조는 게 느껴졌다. 그토록 평화로운 시간이 내일도 모레도 예정돼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누워, 달리 할 말이 없을 때까지 그렇게 누워, 배가 고파질 때까지 그렇게 누워, 젊음을 낭비했다. 그곳에선 해가 어느 편으로 기울었을까. 사방에 노을빛이 가득할 즈음 우리는 일어났다. 그 사이에 나눈 이야기는 대충 이렇게 정리됐다.

“아, 몰라. 씨발. 뭐라도 써야지.”

한참 만에 몸을 일으켰지만 주변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꽃노을과 담배꽁초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친구의 얼굴에 결의 비슷한 게 약간 서린 것 외에는. 나는 이 젊음의 고갈을 상상할 수 없었다. 결의의 기근도 예견하지 못했다. 우리의 풍경은 지긋지긋하게 그대로였으므로. 우리가 헤프게 쓸 수 있는 것은 젊음뿐이었고 노을은 내일도 모레도 머리 위를 뒤덮을 것이었으므로.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젊음은 바닥을 드러냈다. 흡연은 전성기를 맞았다. 글쓰기에 관해서는 어떤 작정도 하지 않는다. 가끔씩 죽은 작가 몇몇을 소용없이 성원할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 것인지, 1도 모르겠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혼잣말 실력이 또 느셨네요

이윤설 누나가 소천했다. 2020년 10월 10일 2시 35분부터 이윤설 누나가 세상에 없다. 나는 누나와 인사를 나눴고 차를 마셨고…

인생이 들썩거릴 결심의 배후

그날, 무엇이 내 감정을 옮겨놓았을까. 문밖에서 한참 울다가 돌아가던 A로부터, 우리 790일을 고행으로 명명하고 떠난 B로부터, K대학까지 등졌던…

파편, 2013년 04월

20130428 (일) 4번 척추에 신경이 눌려 운신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내게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호통에도 슬픔을 새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