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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거 아님 주의
내 자전거 아님 주의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건 처음이다. 아버지는 텅 빈 서울에서 혼자 시간을 깎아나갈 나를 걱정하고, 어머니는 밥 다운 밥 먹을 기회를 빼앗긴 나를 딱하게 여기고, 나는 고향 집 안에 무겁게 감돌 적막을 죄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는 정말이지 악독하다. (김지은 씨는 귀향 없는 명절이 “대박 좋다”며 “둑흔둑흔”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집 안에 갇힌 날만큼 불안이 더욱더 늘고 있다. 걸핏하면 열이 오르고 맛이 덜 느껴진다. 대면 강의를 하고 난 뒤에는 맛소금을 찍어 먹으며 자가진단을 했다. 이제는 폐가 예전만큼 부풀지 않는 것 같아 자꾸 심호흡한다. 근심 때문인지 가벼운 걷기에도 심박수가 156bpm까지 올라간다. 마스크를 도모지(塗貌紙)처럼 쓰고 살다 보니 더 빈번히 공황이 온다. 가뜩이나 내 몸에 대한 신뢰를 잃은 와중에 당장 졸도할 것 같은 공포가 발끝까지 관통하면 간신히 지켜온 통제력마저 잃어버린다. 그 결과는 발작적 쇼핑으로 나타난다. 이달에만 AB 슬라이더, 푸시업 바, 악력기, 헬스 장갑, 자전거 줌라이트, 스마트밴드를 샀다. 체온과 산소포화도도 궁금해서 쇼핑몰을 들락날락한다. 코로나19가 더 이어지면 조금 다른 질감의 경제 위기가 찾아올 것만 같다.

엊그제 새벽에는 새 줌라이트를 단 자전거를 타고 반포한강공원에 다녀왔다. 그보다 전에는 한강 초입부터 사람이 북적여서 바로 돌아 나오기도 했다. 나는 반포한강공원을 향해 페달을 밟는 내내 집으로부터 이렇게 멀어져도 괜찮은지 계속 생각했다. 더불어 땀이 더 나도 괜찮은지, 심장이 더 빨리 뛰어도 괜찮은지, 걱정하고 고민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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