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대략 18개월 전에 쓴 단편소설 「사랑의 대부분」을 다시 꺼냈다. 나는 이 글 가운데 사랑에 관한 해설을 특별히 아낀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표현할 수 없는 서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니 전체 얼개가 엉터리다. 주인물인 남자가, 전혀 의미하는 바가 없는 부조리한 상황·공간 속에 던져진다는 건 어떻게든 우겨본다지만, 진짜 문제는 그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절망 혹은 갈망하지 않는 인간이다. 실존을 포기한 인간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울음을 터뜨린다는 결말은 진정 나조차 믿기지 않는다.

여기서 질문.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나도 정말 어지간히 발전이 더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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