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너 상준이니?

건아가 물었다. 아니다. 너는 추건아가 아닐 것이다. 내가 스물세 살에 만난 건아는 이미 여러 번 다른 번호로 옮겨 다른 사람이 됐을 거다. 그걸 확신하면서도 건아라는 이름과 그 연락처를 10년 동안 지우지 못했다.

너 상준이 아냐?

건아가 다시 물었다. 아니다. 나는 분명 상준이가 아니고 너는 건아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카카오톡 친구목록에 건아라는 이름이 나타났을 때, 내게 말 걸지 않기만 바랐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건아라는 이름의 연락처를 당장 지우고 내게 상준이냐고 묻던 사람이 너였을 지도 모른다는 궁한 의심을 마음에 남겨놓는 것이다.

위안이 된다면, 나는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절음의 고갈, 결의의 기근

우리는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잔디밭에 누워 보냈다. 그 사이사이 레쓰비 깡통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볕은 대체로 따가웠다. 학보를 펼쳐…

적상추야, 적상추야

카모마일 재배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두 번이나 파종을 했지만 푸른 기운은 흙이 날로 삼켰다. 수백 개의 씨앗이 묻힌 자리에…

파주 출판단지 전공현장실습

파주 출판단지에 다녀왔다. 허울은 전공현장실습 인솔자였지만 나부터 집합 시간을 어기기 일쑤였다. 일정이 끝날 즈음에는 손지민 조교님의 얼굴을 볼…

이제 그리움과 돌아눕는다

지난해 1월 24일의 일이다. 나는 노트북을 수리하기 위해 후지쯔 서비스센터 용산지점을 찾았다. 이제 대학교를 갓 졸업했을 듯한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