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2 (수)
투퀴디데스 짓고 천병희가 옮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하고 노영심이 노래한다. 그 위대한 역사가 가라앉은 건 무덤덤했는데 그리움만 쌓이는 건 매우 슬프다.
20120912 (수)
뭉개진 사람들이 외따로이 지나간다. 나는 오랜 상심을 약속하고도 몇 날이나 울음주머니를 틀어쥐어야 할지 생각해본다. 눈 내리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지겨워질까. 당신에 관해 명랑한 소문이 돌면 말아 들어간 마음도 불룩해져 비틀어 뽑아낼 수 있을까. 다시는 상냥한 것과 예감하지 말아야지.
20120913 (목)
다시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리며 방을 치운다. 깨끗한 자리마다 당신이 생글생글 웃고 앉았다. 성가시다. 진창으로 방을 옮기고 문을 꼭 잠근다.
20120920 (목)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강독하는 수요일. 뿌옇게 보이는 칠판 글씨를 또박또박 받아적으며 아테나이와 스파르타 사람들을 그려본다.
20120922 (토)
은광 교회. 초상권과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강변하는 아이들에게서 무른 마음이 만져졌다. 결단코 내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예쁜 얼굴이나 집에 이르는 길이 아닐 것이다.
20120922 (토)
푸른초장 교회. 싫은 것 투성이인 아이들을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끄러워졌다. 입을 다물게 하고 싶은 사람의 목을 조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에 비해 내가 썩 나은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20120927일 목)
시를 짓고 있거나 시인이라는 사람들과 낯 뜨거운 대화를 주고받다가 도서관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오규원을 읽는다. “시인의 말 // 시집을 낸다. // 6년만이다. //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맹이, / 이런 물물(物物)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이다. // 2005년 봄 서후에서 / 오규원” 당신이라면 이 한 시절을 뭐라고 기록할까.
20120929 (토)
어지럼증이 다시 시작됐다. 몸에 좋은 것들을 엄마는 자꾸 권했는데 싫은 내색을 반사적으로 했다. 아침밥을 먹고 한 번, 점심밥을 먹고 한 번, 잤다. 저녁밥을 먹은 뒤에도 한 번 더 자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