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인구가 두 명 늘었다.
조카 1호가 먼저 이사를 왔고 조카 2호도 오월에 온다.
이사 당일에 처음 가 본 신림동 주택가는 연극 무대 뒷편 같았다. 신림역부터 번화한 가게가 쭉 퍼져나가지만 불과 10분을 걸으니 합판에 덧대고 덧칠한 무대 정경이 끝나버렸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이집 저집 떠넘겨지다가 결국 어중간한 경계에 놓이게 된 음식물 쓰레기통이 맨 먼저 보였다. 그리고 언덕길을 따라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가 머릿돌처럼 놓여 있었다. 물론 흑석동과는 비할 수 없이 좋아 보였다.
집 정리는 낮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나는 이케아 BISSA 3단 신발장을 조립하고 KT 무선인터넷을 알아보고 대우 냉장고를 청소하고 다이소에서 생활용품을 사 날랐다. 이케아 신발장은 조립을 마친 뒤에도 부품이 여러 개 남았다. 종류별로 고르게 남으면 좋았겠지만 어떤 건 딱 맞아서 조금 불안했다.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 기운은 남아있지 않아서 모든 기를 모아 조카 1호에게 주의를 줬다. 조카 1호는 “그래 봐야 신발장인데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대꾸했다. 우리는 문과 가족이다.
집 정리를 대강 마치고 조카 1호와 다이소에 갔다. 고심을 거듭하여 틈새 선반과 전선 몰드와 소독 티슈를 샀다. 사실, 토이 스토리 스티커를 고르는 일에 훨씬 더 진심을 다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빨간 어묵을 두 개씩 사 먹었다. 저세상 마그마 레드 컬러의 떡볶이는 다음을 기약했다.
냉장고에 핀 곰팡이를 청소하고 멀티탭의 전선을 고정하고 옷장을 정돈하고 나니 밖이 캄캄했다. 우리는 조카 2호 없이 조카 2호가 좋아하는 마왕 족발을 주문했다. 마왕 족발을 먹으면서 조카 1호의 장래 계획을 조금 듣게 됐다. 과연 조카 1호가 지금의 젊음을 대가로 어떤 행복을 매수할지 더 궁금해졌다. 나는 비트코인 같은 젊음을 일찌감치 엿 바꿔 먹었지만, 조카 1호는, 조카 1호를 비롯한 요즘 사람은 덜 어리석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조카는 당장 다음 달 월세와 공과금을 걱정했다. 취업 전 단기 아르바이트도 고려 중인 것 같았다. 이 목적이 분명한 노동이 얼마나 고단한지 너무도 잘 알아서 안타까웠다. 동시에, 우리의 일상적인 비루함에 한 명 더 발을 깊이 담그게 된다는 사실이 그리 싫지 않았다. 미운 사람일 경우에는 통쾌함 마저 느끼곤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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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 1호의 비극에 맞장구치는 사이, 모노 형이 흑석동 ‘화르르’에서 숯불 무뼈 닭발을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나는 신림동 ‘마왕 족발’을 먹으면서도 닭발을 씹는 상상을 했다. 영업 제한 시간이 가까워서 아쉬웠다.
🧑🏼🦰 며칠 뒤(3월 18일), 부모님께서 신경외과(박승원 교수) 진료를 보러 서울에 오셨다. 매형은 부모님을 차로 직접 모셔 왔고 누나는 기차를 타고 왔다. 진료를 마친 뒤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모두 함께 조카 집으로 향했다. 조카 2호가 지낼 방 벽에 페인트칠을 준비 중인 형까지,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였다. 그 여정에 누나가 내게 물었다. “점심은 뭐 먹지? 신림동은 떡볶이가 유명한 거 아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