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K가 장가를 갔다.

K와 마찬가지로, 나도 K에게 오랫동안 마음을 썼다. 응급실에 두 번 데려갔고, 시간의 공백이 거의 없는 위문편지를 군부대로 보냈고, 이사 때마다 손을 빌려줬다. 이웃해 살던 시절에는 K가 조리한 괴이쩍은 음식을 매일 먹었다. 그리고 틈틈이 K의 시를 받아 읽었다. 대부분은 쉼표가 말도 감정도 깨끗이 먹어치우고 난 후의 풍경 같은 작품이었다. 그래. K의 시는 조용했다. K의 성격만큼이나. K의 연애만큼이나.

내가 항상 달아났던 것과 달리, K는 잔잔한 물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을 하면 기쁨의 물결에 한 번 울렁, 이별을 하면 슬픔의 물결에 한 번 출렁.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그게 K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물론 나는 그 점을 좋아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으면서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K를 신뢰했다. 그런 K가 장가를 간다니.

나는 신부와 손을 잡고 하얀 카펫 위를 걸어 나오면서 지을 K의 표정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K의 그 표정은 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물 위의 낮잠이 끝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는 K의 맛없는 김치찌개를 생각하며 피로연 음식을 먹었다. 입맛이 돌지 않았다. 폐백을 마치고 피로연장에 나온 K는 많이 지쳐 보였다. 나는 K를 억지로 붙잡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했던 K의 일면에 관해서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썩 어울리는 이야기 같지 않았다. 나는 인사만 간단히 하고 예식장을 등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가 좋아했던 K의 일면이 이대로 사라져도 어쩔 수 없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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