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여태 초입이다. 참신한 우울도 슬픔도 없으면서 계속 여기다. 어머니는 내가 열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기 전에 속옷을 벗어 두고 가라 말씀하셨다. 내 부진이 삼재 탓은 아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바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여전했다. 열차가 연착됐지만, 그것뿐이었다. 내세의 플랫폼까지 나를 싣고 달렸더라도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를 느리게 빠져나오다 묵직한 빗방울에 맞았다. 아야, 하고 혼자 엄살을 부리다가 한 우산을 나누던 이들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지워졌다. 이렇게 사소해질 걸 왜 찢어내듯 작별했을까. 모든 일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리고 뜬금없이 저 빗방울처럼 돌바닥에 머리를 찧고 싶었다. 납작 엎드리고 싶었다.

다음 날, 서달산에 올랐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봄바람의 짓궃은 장난

커튼 자락 슬며시 쓸고 달아나는 봄바람 장난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낮잠에 든다. 얼마 만에 실눈 떠보니 입 맞추며 오래도록…

수치심과 고상하고 이상한 고집

나는 내 안에 깃든 불안에 쉽게 허물어진다. 누군가 선풍기를 켠 채 잠들어 있으면 반드시 꺼야 하고, 불법 정차…

날라리 똥개 영철이

“(…) 날라리 똥개 같네.” 영철이는 나보다 두 살 많지만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그리고 비겁한 놈이었다. 따라서 그런…

파편, 2014년 03월

20140308 (토) 조금 보수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모든 문장을 새로 쓰고 있다. 불과 두 해 전에 쓴 소설인데도 도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