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나무가 꽃을 모두 덜어냈다. 나무를 힐난하는 꽃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득한 허공을 세 계절이나 지탱해야 할 나무가 안쓰러운 듯 먼 길로 돌아 떨어졌다. 물론 나무는 어떻게든 참아낼 것이다. 견딤의 보상으로 저 무수수한 꽃잎들에게 돌아올 곳이 된다는 건 샘나는 일이다. 게다가 다음 봄은 그리 먼 때가 아니다. 시간의 배려대로 한 잎 한 잎 남김 없이 그리워하다 보면 꽃봉오리가 어느새 온몸을 빨아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봄꽃 한 송이 들려 떠나 보낸 사람 없는 나는 한 해를 또 어떻게 견뎌야 할지 걱정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명절약사(名節略史) 2/3

김 여사가 뛰어 들어왔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지루한 평화는 그녀의 젤리 슈즈에 의해 손 써볼 틈 없이 무참하게 짓밟혔다.…

살게 하소서!

너의 환후(幻嗅)에 시달린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미열이 난다. 몸살은 나를 차가운 파도가 들고나는 개펄에 조심스럽게…

달마사) 여태 초입이다

여태 초입이다. 참신한 우울도 슬픔도 없으면서 계속 여기다. 어머니는 내가 열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기 전에 속옷을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