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카모마일 재배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두 번이나 파종을 했지만 푸른 기운은 흙이 날로 삼켰다. 수백 개의 씨앗이 묻힌 자리에 다시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었다. 땅도 손도 낯도 가리지 않는다는 적상추다. 내가 한동안 쥐며느리가 될지 토끼가 될지 모르고 자란 것처럼 이 씨앗도 자신이 적상추인 줄 모른 채 싹을 틔울 것이다. 그게 안타까워서 이름표를 만들어 세웠다. 글 읽는 법을 익히기 전까지는 적상추야 적상추야 부르며 물을 줘야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파편, 2017년 03월

20170320 (월) 내일 시험을 포기하자마자 죽은 식욕이 살아났다. 식욕 부활 기념으로 뼈 없는 닭발과 목살 소금구이를 먹었다. 전에…

괴이한 메모들

양말 내 양말을 한쪽만 누가 몰래 버리나. 짝이 없는 열세 켤레. 집 나간 자식처럼, 어느 여명에 슬그머니 기어…

너는 맹추처럼

뒷방에 가만히 혼자 누워 어슬어슬한 너를 어루더듬는다. 너는 맹추처럼 자꾸 웃어준다. 다디달다. 어딘가에 있을 진짜 너에게 공연히 죄스럽다.

흑과 백의 세계

눈 오는 밤, 흑백의 세계에서는 바닥이 희게 사라진다. 달빛이 발자국에 드문드문 짓는 그림자의 징검다리를 밟고 집으로 간다. 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