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다시 문서 파쇄.

집 안에 모셔둔 문서 대부분을 파쇄했다. 낱낱이 살펴 쓸모에 따라 분류하는 데만 나흘이 걸렸다. 어떤 이유로 한때 매료되어 남겨둔 문서 대부분이 무가치한 편에 가서 쌓였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모든 효용이 뒤엎어졌을 리 없다. 그렇다고 내 지성과 직관이 갑작스럽게 도약하여 무심결에 달통했을 리는 더욱 없다. 이 가치의 변질은 오로지 내 변덕 탓이다.

그간 나는 변덕을 충만한 의지로 여기곤 했다. 가끔 잘못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인생은 길고 느리니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제 대강 알겠다. 번번이 묵살했음에도 여전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전력으로 열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주변을 정리해야겠다. 나만 남겨야겠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너의 얼굴은 갖가지 도형

가로등 빛이 잡아 끌어 바닥에 내려놓은 나무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서늘한 바람에 나무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 멀미가…

혼잣말 실력이 또 느셨네요

이윤설 누나가 소천했다. 2020년 10월 10일 2시 35분부터 이윤설 누나가 세상에 없다. 나는 누나와 인사를 나눴고 차를 마셨고…

가을엔 한 번쯤 멜랑콜리

나도 남자니까, 잠깐 가을을 걸치고 쓴다. (나도 잠깐 남자니까, 라고 읽어도 된다) 나는 여름 막바지에나 어울리는 얇은 줄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