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10201 (화)

귀향날. 집 단속을 수십 분 했다. 확인 강박이 극에 달했다. 대문을 넘자마자 종이가방 손잡이가 끊어졌다. 사납게 짖는 개에 놀라 발목을 접질렸다. 절뚝절뚝. 버스가 오지 않아 택시를 탔는데 버스한테 졌다. 역 광장에 어르신 두 분이 싸우고 있었다.


20110202 (수)

이것은 음료인가 밥인가! 엄마표 식혜(엿기름이란 참 신기하다).


20110204 (금)

먼 숨소리. 오르내리고 있을 가슴들. ‘나도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깃들자마자 조카 유찬이가 운다.


20110204 (금)

바다에서 절이 솟아 기울어진 마음을 바로 일으켜 세운다. _간월암


20110204 (금)

안갯속으로 들어간다. 흠뻑 젖어 돌아 나온 이는 더 이상 그/그녀가 아니다. 이제, 나도 들어간다. _간월암


20110205 (토)

공간, 간격, 속도가 달라진 것만으로도 난 쾌활해졌다. 난 건강해졌다. 다만, 심조증은 털어낼 수 없었다.


20110206 (일)

어둠의 파문 위를 떠다니다 남산공원에 있던 우물에 닿았다. 나는 우물 안을 보며, 언젠간 저 바닥에서 오늘을 올려다볼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 우물은 오래전에 메워졌다. 지금 나는, 내가 계획한 일이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는 일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


20110206 (일)

나는 삽시간에 슬퍼지고 나릿나릿 기뻐진다. 나는 영영무궁 슬퍼하고 돌차간 기뻐한다. 하지만, 슬픔을 맞닥뜨리든 기쁨을 마중하든 풀썩 주저앉아 골똘할 줄 안다.


20110211 (금)

지금 문 열고 들어온 당신 얼굴에 햇빛이 잔뜩 묻어 있다.


20110211 (금)

따뜻했던 나의 사랑이 날아간다. 날개 그림자만 나를 한 번 끌어안곤 스쳐 간다. (…) 이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과거 시제로 쓸 수 없다. 내가 여전히 그날처럼 식어 있는 탓이다.


20110212 (토)

꼭 필요한 책은 꼭 절판.


20110212 (토)

작물들만 냉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나는 특히 ‘장해형냉해(障害型冷害)’에 속수무책이다. 장해형냉해에 피해 입은 벼는 “꽃가루의 형성이나 수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수확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20110212 (토)

극장의 소형 팝콘 제조원가가 320원이었다니! 심지어 종이용기가 더 비싸구나. 장사 참 잘한다. <팝콘제조원가 = 옥수수·기름·소금(140원) + 종이용기(180원)>


20110213 (일)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얼마나 시시콜콜한가. 내 생각 안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시시해지는가. 떨어져 나갈 줄 모르는 멸렬한 생각…. 기억은 성가시고 감정은 거추장스럽다. 문은 여태 열어두었다. 여기서 그만 나가라.


20110213 (일)

이웃집 연인의 웃음소리를 듣다가 집을 나왔다. 열린 피아노학원 간판은 얼린 피아노학원이 되어 있다. 두 여자가 버스에서 “참이슬 1병 추가”라고 쓰인 스마트폰을 허공에 흔든다. 사람들은 좀처럼 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재미있는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20110213 (일)

건물 입구가 잠겨 있었다. L은 쌍여닫이형 자재문 중 하나를 흔들었고 마침 안에서 대화 중이던 여자분이 문 열림 버튼을 눌러줬다. 찰칵. 우리는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후 로비서 들리는 웃음소리. 우린 원래 열려 있던 우측 문으로 들어온거다. 서로 멋쩍다.


20110214 (월)

손가락이 글자판을 건너다니는 소리. 의자의 네 바퀴가 열을 맞추며 밀리는 소리. 마른 종이가 제 배나 등을 내보이는 소리…. 이 안은 마주 앉은 여자의 소리로 넘쳐난다. 비록 내 ‘눈의 목소리’는 도외시하고 있지만, 제법 떳떳한 책 읽기 중이다.


20110214 (월)

100원 주웠다. http://is.gd/wjs9FA


20110214 (월)

표현이 모호하고 불명확한 문장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표현이 모호해지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불명료하기 때문이며, 작가의 사상이 불명료하다는 것은 사색의 오류, 모순, 부정에서 시작된다. ― 쇼펜하우어, 『문장론』.


20110214 (월)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하나의 사상이 떠오르면, 그는 즉시 머릿속에 떠오른 사상을 명료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이 같은 노력의 결과가 바로 문체이다. ― 쇼펜하우어, 『문장론』.


20110214 (월)

문장이 난해하고 불분명하여 모호하다는 것은 그 문장을 조립한 작가 자신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석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사실을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숨기려 한다. ― 쇼펜하우어, 『문장론』.


20110214 (월)

도시가스 요금 지로용지를 잃어버렸다. 뒷주머니에 대강 구겨 넣고 집을 나섰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자동이체 신청도 안 했는데…. 부디 어느 친절한 재력가가 주워서 묻지마 대납을 해준다면 참 고맙고 참 좋겠다.


20110214 (월)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 300년 전, 볼테르(1694~1778)가 내게 남긴 말이다.


20110216 (수)

한국헤세학회를 한국허세학회로 읽다니….


20110218 (금)

나는 영원히 너의 바깥이다.


20110218 (금)

표정이 마음의 표지가 되는 일을 경계한다. 네가 나의 선망을 알게 될까 겁이 난다.


20110218 (금)

나의 외형은 이토록 손쉽게 간소화된다. 하지만 너는 어떤 형상의 조합으로도 환유할 수 없었다.


20110218 (금)

내 그릇된 공부법 = 본문 약간량 독서 → 각주와 참고문헌의 미로에서 배회 → 인터넷 검색 → 연관도서 다량 주문 → 심리적 위안. 집에서 책과 책장을 없애는 게 소원인데, 이번 주에만 책 18만 7천80원 주문….


20110222 (화)

냠냠쩝접, 절겅절겅, 쯔읍. 냠냠쩝접, 절겅절겅, 쯔읍. 냠냠쩝접, 절겅절겅, 쯔읍. 냠냠쩝접, 절겅절겅, 쯔읍. 맛있다, 밀크캐러멜. 캐러멜?


20110222 (화)

“만일 당신이 언어에 하나의 기호를 덧붙이면 그만큼 당신은 다른 기호들의 의미를 감소시키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처음에 단 두 개의 기호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모든 의미는 이 두 기호에 배분될 것이다.” ― 소쉬르.


20110222 (화)

내과병원에 다녀왔다. 흉부 통증을 느낀 지 벌써 1년여. 폐 엑스레이 촬영과 (1년 전에 접종한 주사로) 간염 항체가 제대로 생겨났는지 피검사를 했다. 의사는 폐 사진을 보더니 운동 좀 하란다. 꾸준히.


20110222 (화)

글줄 읽다가 졸음 쏟아질 땐 사행성 게임이 최고! 온데간데없는 졸음, 온데간데없는 돈…. ‘파워볼’(1게임 1천 원) 말고 ‘트래져헌터’(1게임 5백 원)나 할걸….


20110223 (수)

(두려움과 부족함으로 인하여) “나는 단지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또는 주제가 요구하는 것)만 말할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언어가 글을 쓰는 사람의 손을 이용하여 스스로 말하는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 움베르토 에코.


20110226 (토)

엽서를 찢었다. ‘비밀이야’ 보다 훨씬 비밀스러운 엽서를….


20110226 (일)

“낱말의 역사”


20110227 (일)

비의 추락을 관망할 수 있는 창 하나 내어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앞에. 카페라도 갈까? 비는 자꾸 두드리는데.


20110227 (일)

내 첫 끼니 빠다코코낫. 밥 지을 힘이 없다.


20110228 (월)

커피믹스 다섯 가지를 펼쳐놓고 고민을 한다. 이거나 저거나, 고만고만한 걸로 심각한 게 우스워서, 큰 소리로,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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