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서 파쇄.
집 안에 모셔둔 문서 대부분을 파쇄했다. 낱낱이 살펴 쓸모에 따라 분류하는 데만 나흘이 걸렸다. 어떤 이유로 한때 매료되어 남겨둔 문서 대부분이 무가치한 편에 가서 쌓였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모든 효용이 뒤엎어졌을 리 없다. 그렇다고 내 지성과 직관이 갑작스럽게 도약하여 무심결에 달통했을 리는 더욱 없다. 이 가치의 변질은 오로지 내 변덕 탓이다.
그간 나는 변덕을 충만한 의지로 여기곤 했다. 가끔 잘못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인생은 길고 느리니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제 대강 알겠다. 번번이 묵살했음에도 여전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전력으로 열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주변을 정리해야겠다. 나만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