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20180509 (수) 

새가 재잘댈 때까지 또 잠들지 못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자꾸 시간을 거슬러 넘어왔다. 대체로 무례함과 관련된 것이었다.


20180514 (월) 

서울독서교육지원본부… 저는 어쩌다 여기 있는 거죠?


20180515 (화) 

어제 현기영 소설가를 만났다. 작가는 자신을 제주 4.3 항쟁 희생자의 한을 씻김 하는 매개자로 여겼다. 그 소명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다. 이따금씩 참사에 물든 말을 떠듬떠듬 소리 내다가 그 광경이 잡힐 듯한 지 두 손을 허공으로 뻗어 움켜쥐곤 했다.


20180516 (수) 

“제가 쉽게 잊히는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인 것 같네. 나중에 백문백답 장점란에 써야지.


20180517 (목)

“사랑에 관한 소설이 있을까요? 기억에 남는.”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받을 질문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도 자정 가까이에 하기 좋은 질문처럼 보였다.


20180517 (목) 

다른 사람이라면 더 잘할 일을 내가 하고 있다. 여러모로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안 하겠습니다.


20180518 (금) 

기억은 마지막에 기억하는 쪽이 주인이지. 오늘의 부끄러움은 내가 반드시 각색하겠다.


20180518 (금) 

가수가 떠나자 축제도 끝났다.


20180518 (금) 

축제가 끝나기 전, 그렇지만 진짜 축제는 아직이던 맑은 날 오후에 나는 잔디광장에서 무르게 웃고 있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를 싫어하는데 그 마음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분 뒤엔 그림 한 장을 건네받았다. 내가 오래전에 손을 놓친 소년이 웃고 있었다.


20180522 (화) 

자꾸 부고가 온다. 느닷없이 상주가 된 이는 지금 없고 나중에도 없을 사람 얘기를 하며 웃고 울었다. 그리고 숨 내쉬듯 혼잣소리를 했다. 이제 보고 싶으면 어떡해. 나는 향내 같은 고요가 무서워서 아무 소리나 냈다. 생각해야지, 라고.


20180525 (금) 

미안하지 않았던 행복이 없다.


20180527 (일) 

나보다 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

어부 정대영의 결혼

열차를 타고 어부놈(정대영)의 결혼식장에 가고 있다. 자리에 앉아 눈을 붙이려는데 새삼 우리가 친한 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무화과는 지네 운수조합 사무실

얼추 익은 무화과를 거둬들였다. 하루 더 나무에 매달아두고 싶었지만 나와 새는 해마다 무화과 수확 시기를 두고 눈치를 살펴왔다.…

가을엔 두 번쯤 멜랑콜리

여자는 나를 돌아봤다. 그 순간, 지구를 삽시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유성이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파편, 2018년 07월

20180714 (토)  편의점에 가서 떡볶이를 사 왔다. 인사는 나 혼자 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3일 만에 백 미터 걷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