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만 남겨둔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모여 있다던 흑석동 원불교기념관 1층 뚜스뚜스(브런치카페)는 대놓고 뚜레쥬르 간판을 베낀 것 같았다. 하지만 내부는 주눅이 들 만큼 넓고 높고 밝았다. 흑석동에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 줄어든 기분으로 매장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먼저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환대에 대처하는 자세는 영 늘지 않는다. 선물에 대처하는 자세도 영 늘지 않는다. 그래도 감격스러운 표정은 감춰지지 않은 것 같았다.
종강이 지난달 중순이었으니 스무날만의 재회였다. 나 혼자 영원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나려니 괜히 쑥스러웠다. 비록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대신 도맡아 준 유주희에게 고마움을 갚기로 한, 미리 굳게 약속된 자리였지만, 그래도 강의실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건 늘 새로운 기분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고기가 좋다는 유주희의 의견에 따라 엉터리 생고기로 자리를 옮겼다. 한창 저녁 식사 시간이라서 대기 5번에 이름을 올려뒀다. 김경린, 구민지, 선희수는 지루함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떤 느낌이 있다’는 사진을 계속 찍었다. 아직도 구닥이나 후지캠을 쓰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 놀랐다.
오랜만에 찾은 엉터리 생고기는 영 적응이 안 됐다. 점원께서 내내 곁에 서서 두툼한 생고기를 구워주는데 참 송구스러웠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다시 안 오고 싶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먹고 잘 마셔서 보기 좋았다. 네 명 중 세 명이 모태솔로라고 말해서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줄곧 웃었다.
술이 모자란 게 뻔히 보였지만 설빙으로 자리를 옮겼다. 빙수를 먹으면서 아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선희수는 자꾸 아저씨 같은 드립을 던져놓고 친구들의 눈치를 봤다. 적당한 비난을 기다리는데 무시당할 때의 반응이 제일 웃겼다.
설빙의 점원이 내 등 뒤로 몇 번을 오가면서 매장을 정돈했다. 아이들의 시계 보는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손님은 어느새 우리뿐이었다. 시간이 어디서 샌 것 같았다. 가끔 즐거운 일이 생기면 칠칠치 못하게 시간을 흘리고는 한다. 다 체념하고 아이들을 지하철역까지 배웅했다. 개찰구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향해 케이크과 꽃이 들린 양손을 흔들었다. 빚을 갚으려다 또 빚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