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Light

1996년 어느 날, 이정록 선생님은 시인의 긍지를 걸며 “너는 작가가 될 것이고 되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구(泥溝) 속에서 반짝이는 캐미라이트를 발견한 떡붕어처럼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저걸 삼키면 내 몸에서도 빛이 날 거야. 그리고 내가 기꺼이 원한다면 분명히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해주지 않았다. 언제. 나를 얼마나 삭혀야 홍탁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이 지점부터 한 소년의 불편한 인생이 시작되고 만다.


2006년 6월 5일, 충청남도 천안시 <양지문고> 앞에서 청년은 이정록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내 손을 먼저 낚아챈 선생님은 “이야, 넌 그대로구나”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반보쯤 뒤떨어져 걸었다. 몸도 마음도 둥그렇게 변해버린 선생님은 내 나이를 묻고서 “가장 좋은 글을 쓸 때다”라고 되뇌었다. 그건 온전히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순간 억센 바람이 불어왔고 셔츠 칼라를 살짝 덮은 선생님의 뒤 머리카락이 시집 페이지처럼 펼쳐졌다.

선생님은 동료 문인이 “천안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곳”이라고 장담했다는 <삼성 순대 곱창집>으로 이끌었다. 첫 방문일 게 분명한데도 주인아주머니의 세 번째 남자쯤 되는 표정을 하고. 음식을 주문한 지 채 오분이 되기도 전에 곱이 잔뜩 박힌 곱창이 나왔다. 그리고 선생님의 다른 제자들(ㄱㄹ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학생 및 동대학원생)이 주변 자리를 채웠다. 이제 가까스로 성인이 된 사람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가히 ‘세대 공감 올드 앤 뉴’라고 이름 붙일 만 한 자리였다.

사람들은 서로의 잔에 탁주(濁酒)를 인심 좋게 채우면서 선생님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뒤섞인 누룩 탓인지 입안이 텁텁해질수록 마음도 덩달아 착잡해져 애은 머리카락만 옆으로 쓸어 넘겼다. 선생님은 내 속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그 깊이를 가늠했다. 그리고 ‘창작의 우파니샤드(Upanisad)’를 전해주셨다. 이 가르침은 초심자에게 기(氣)의 흐름을 역류시킬 만큼 신비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이는 이정록 문파(門派)의 정수이므로 함구해야겠다.

말(言)이 흐르던 자리에 탁주가 채워지고 넘치고서야 선생님과 나는 밖으로 나갔다. 한때 화장실 안에서 몰래 피우던 담배를 화장실 앞에서 맞피우며 조금 서러웠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의 뒷길에서 마주했지만 그사이 성인이 되었을 뿐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그래서 재회의 감동은 급류에 쓸려 가버리고 탁류만 유구히 흘렀다.

“나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평범하게 잘 살고 있을 텐데.”

선생님은 말했다.

나는 입안의 담배 연기를 급히 뿜으며 웃었다. 나도 한때 같은 생각을 했었다. 머릿속 톱니바퀴의 이가 망가질 정도로, 가슴 속 증기 장치가 마모되어 피식피식 맥없이 터질 정도로, 얼크러져 버린 이유를 바깥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나도 너도 글을 팽개치지 않았다는 거야.”

“네, 그러니까요. 어쩌다 벌써 10년이네요.”

멈출 시간이 10년이나 있었다. 그동안 가족의 기대를 등졌고 친구 여럿을 놓아버렸고 녹색 지붕 집 소녀(빨강머리 앤) 유형에 속하는 낙천적 성격을 자진해 망가뜨렸다. 뒷순위로 미뤄두고 돌보지 않은 것들에서 불쾌한 냄새가 올라왔다. 나보다 두 모금가량 앞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선생님의 낯에는 역사(歷史)가 제각기 다른 주름이 뒤엉켜 있었다. 목에는 세월이 그은 칼금이 더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십 년 묵은 제자는 아직 피부만 상했다. 이날에도 선생님은 ㉠ 무단결석 한 나를 찾아 자취방에 갔더니 담배꽁초와 책을 수북이 쌓아 놓고 “이거마저 읽고 학교 갈게요”라고 했다는 일화와 ㉡ 중학생 여자 친구의 손에 이끌려 대구로 가출한 이야기를 신명 나게 풀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새로운 서사도 없이 무사하다. 그래서 무수한 사건·사고의 중심에서 될 대로 되라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소년들이 부러웠다. 시간을 갈아 끼울 수 있다면, 다시 그곳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낯선 일행들과 <역전 호프>를 거쳐 <투다리>를 빠져나오니 자정 무렵이었다. 선생님은 신라면 두 봉지를 들고 대리운전 기사가 꺼내온 차 뒷좌석에 올랐다. 나도 옆에 앉아 턱을 괴고 꾸뻑꾸뻑 조는 선생님을 조용히 지켜봤다. 목에 있던 칼금이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두정역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오늘 밤 신세 질 K의 집으로 걷는 동안 “내 몸이 너무 성하다”(이정록, 「서시」 인용)고 생각했다. 어느새 아문 상처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추억이 가끔 눈을 적실 뿐.


K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술을 다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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