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애(自己愛)가 다양한 형태로 진열된 곳에서 불안을 느낀다. (“엄마, 엄마는 내 콧물을 빨아서 귀하게 키워줬지만, SNS에서 자기애는 주로 이성이 다른 데를 빨아줘야 생긴대. 정말이야?”) 성적 충동이나 욕망이 노골적으로 전시된 곳에서는 공포를 느낀다. (“너는 가슴이나 둔부나 음경이나 음순이 네 전부인 것처럼 굴더라? 신체 일부만 떼어 소셜네트워크 안에 살게 하는 게 좋아? 잠깐.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서 대답해.”)
그럼에도 나 역시 사람이라서 종종 시각적 황홀을 경험하기 위해 온갖 매체에 감각을 내어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정신에 지속적으로 매료되고 싶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관능적인 생각 속에 필수적인 구성요소나 주제로 깃들고 더 나아가 내 생각만으로 누군가의 육체적 고양감을 끌어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이 짧은 글쓰기를 마치더라도 나는 타임라인에 불쑥 등장하는 여자의 사진을 숨 참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람은 왜 그래?”) 이는 어느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눈팅족의 서글픈 하루 일과다.